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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Aug 16. 2016

세계 문화유산 종묘, 그리고 북촌과 계동

동순라길, 서순라길, 향대천, 정전, 공신당, 영녕전, 칠사당, 동양화

http://cafe.naver.com/hongikgaep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된 우리 ‘종묘’에서 과거 인도에서 본 ‘타지마할‘을 본다.

물론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각자의 유산들이겠지만 그 나라 사람들의 그것에 대해 애정 하는 정도가 그 유산의 가치를 척도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종묘‘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그 의미를 알고 있지도 못한다.

사실 종묘 건물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이라기보다 무형문화재이기 때문에

종묘에서 모시는 조선의 왕과 공적이 높은 신하들의 사당에서 오랜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을 위해 제사 지내는 의식에 대해 세계 무형문화유산의 타이틀을 준 것이다.      


‘종묘‘는 2012년부터 시간별 관람제를 운영한다.

내국인은 5시를 제외하고 매 시간 20분에 관람할 수 있는데 미리 정보를 가지고 가지 않았기에 50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토요일은 종일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나 개인적으로 토요일에는 시간이 되지 않으므로 이 부분은 패스하면 매시간 20분을 지켜서 와야 한다.

아마 탑골공원의 그 분위기를 종묘공원에서는 원치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종묘에 대한 신비감을 더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 해서 덕분에 종묘를 조심히 볼 수 있어 좋았다.        



남는 시간은 무엇을 하나 생각하다가 예전에 돈 '서순라길'의 반대쪽 '동순라길'을 돌기로 했다.

'동순라길'도 그렇게 번화하지는 못하고 조명업체나 창고용도로 쓰이는 건물들이 많이 있었고,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의외로 좌석이 꽉 차있어 놀라웠다. 

길에 다니는 사람은 없는데 꽉 차있는 카페라니....

창덕궁 돌담길을 걸으려고 하는데 공사 중이라 내년에나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대신 종묘 이쪽 편으로 인도가 터널처럼 만들어져 신비한 미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간에 늦지 않게 돌아가기 위해 길을 되돌려 종묘 입구로 돌아간다.             



표를 끊고, 3시 20분 입장을 기다렸다.

방학을 맞아 학생들도 있었고, 많은 지방 여행객들도 보였다.

서울이 집인 나도 지방에서 왔다고 생각하니 여행이 더욱 재미있어진다.

시간이 되어 입장하니 문화해설사분이 종묘 입장하는 길에 대해 설명해 준다.

길이 세 개로 나뉘는데 가운데 길은 신들이 입장하고 좌우에 있는 길은 왕과 왕세자들이 입장하는 길이란다.

현재는 왕과 왕세자의 길은 우리도 걸을 수 있는데 그 의미를 참작해서 가운데 길은 걷지 말아달라고 한다.            

‘향대청’으로 들어간다.

‘향대청’은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왕과 왕세자가 준비하는 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병풍에는 모란꽃들이 늘어져 있고 향로의 종류가 그려져 있었다.

아직 제사를 지내는 시기는 아니어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5월과 11월에 그 의식을 볼 수 있으니 꼭 오라는 부탁과 함께 5월은 나라에서 국가지원으로 하는 제례여서 더욱 준비가 많이 되어 있다고 그때 와서 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정전‘으로 들어간다.

정전은 왕과 왕비가 승하 후 궁궐에서 3년상을 치른 다음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이다.

국보 제 227호로 지정되어 긴 모양의 종묘로 상징되는 건물이다.

그 앞에 ‘공신당’ 이 있고, ‘칠사당’이 있는데 

‘공신당’은 역대 왕들을 보필했던 업적이 있는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비롯해 우리가 많이 들어본 분들이 모셔져 있다.

‘칠사당‘은 궁궐의 모든 일과 백성의 생활이 무탈하게 풀리도록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운행과 관련되는 신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정적인 분위기가 조용해야 할 것 같고, 비둘기도 그 이야기를 경청하는 듯했다.

정전을 나오면서 한쪽에 청설모가 장난을 치는데 그 친구도 청설모계의 왕족이 아닐까 싶은 엉뚱한 상상을 한다.    

‘영녕전‘으로 간다.

영녕전은 세종 때 태조의 실제 왕은 아니었던 부모와 조부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그 왕비들을 옮겨 모시기 위해 새워진 별묘로 현재 신주 34위가 모셔져 있다.    

사실 건물 자체에서 굉장한 대단함을 느끼진 못하지만 500여 년을 끊이지 않고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그 정성스러운 의식과 그 의식을 행하면서 오랜 기간 연주되어온 종묘제례악이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 무형문화재로 당당히 여기게끔 하는 가치가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 본다.

시간의 얼마 주어지지 않아 스케치는 못하고 밖으로 나온다.

밖에서 종묘의 정문을 바라보며 그것들과 어우러진 소나무의 정취가 아름답다.

여유롭게 스케치북에 하나하나 채워가니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아는 체 하시며 중얼거리신다.

그림을 완성하고 짐을 챙긴 후 창덕궁길로 다시 향한다.        

창덕궁길을 다시 걸어 문 앞으로 걸어가니 너무 늦어 잠겨 있다.

창덕궁 옆길은 어떨까 궁금해서 따라 올라가 본다.

주소지를 보니 '북촌'으로 적혀 있다.

“아 여기가 북촌의 시작이구나.”

옛날 한옥과 현대 건물의 조화 속에 창덕궁의 담장 너머로 학이 너울거리듯 건물 날개들의 자태가 곱다.

그 길을 올라가니 ‘원서동 빨래터‘가 나온다.

청계천과 함께 유명한 빨래터로 알려진 그곳에서 흐르는 물은 여전히 맑다.

옆으로 가니 계동 골목이 나온다. 2년여 전에 갔을 때 보다 많이 복잡해졌다.

골목길임에도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아기자기함을 즐기고 가나보다.

막다른 곳에 ‘중앙고등학교’가 있다. 

어린 남녀 커플은 들어가지만 나는 그냥 ‘북촉한옥마을‘ 방향으로 간다.

’코리아 목욕탕‘을 지나 ‘정독 도서관‘을 거쳐 인사동으로 내려간다. 

이제 여행을 정리할 시간인가 보다.

낮에 불지 않던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이마를 어루만진다.    


2016.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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