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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08. 2017

안경과 함께 사라진 황매산 철쭉제

 장박리, 너백이 쉼터, 철쭉 군락지, 황매산, 모산지, 순결 바위,

http://cafe.naver.com/hongikgaepo


안경을 잊어버렸다.

살면서 산행하면서 여행하면서 내 눈을 내 안경을 잊어버리긴 처음이었다. 

이번 산행지 '황매산'은 쉽게 보았다가 엄청 힘든 산행이 된 철쭉 군락지 능선을 따르는 종주 산행이었다. 

'산청군'에서 시작해 '합천군'에서 끝난 11.6킬로의 산길은 자칫 철쭉의 아름다움에 홀려 얼만큼을 지나왔는지 얼만큼을 더 가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는 미아가 될 수도 있는 산길이었다



아침에 출발한 길가에는 '이팝나무' (밥풀떼기 나무)로 풍성한 꽃들이 마치 머슴의 고봉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처럼 밥풀을 잔뜩 달고 있었다. 

마치 조선시대 '보릿고개'에 그 꽃들을 바라보며 배고픔을 삼켰을 조상들의 간절함을 달래는 제삿밥 인양 서울에도 산청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그 이팝나무는 하얗게 쌀밥처럼 피어있었다. 

잠을 붙이고 나니 약간 산동네 같은 골로 굽이굽이 올라간다. '동해'나 '삼척'으로 가는 길도 아닌데 이렇게 산동네로 올라가다니.... 그렇게 '장박마을'에 도착한 후 장비를 정리해 산길을 걷는다.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을 따라 올라가니 계단식 논이 보이고 그 논을 따라 산숲으로 들어간다. 

어제보단 미세먼지는 조금 진정된 듯 하지만 그래도 여파가 있는지 하늘 볕은 투명하지만 색은 뿌옇다. 산길로 들어서자 나무 그림자와 햇볕이 술래잡기를 하는지 흔들리며 영롱하다. 이제 새잎을 달은 나무들은 기분이 좋은지 '까르르르' 연신 웃는다.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난다. 

산길에 이제 벌써 저버린 '수달래 꽃'이 땅을 수놓으며 길을 인도하고, 조금씩 분홍빛 초록빛 철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양쪽으로 꽃들의 호위를 받으며 걷다가 나타난 철쭉들의 '대홍수', 분홍 초록 바다에 풍덩 빠진 것처럼 세상이 온통 선명하다. 

'너백이쉼터'를 지나 철쭉 군락지 초입에서 '황매산'이 능선째 한눈에 보인다. 

친구를 기다리다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물감을 꺼내 산과 꽃과 공기를 담는다. 색이 마음을 이리 흔들어 놓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물감을 찍어낸다. 도착한 친구와 같이 점심을 먹고 친구를 먼저 보낸 뒤 아쉽게 그림을 마무리한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꽃길은 마음속 노래가 입으로 튀어나오게 흥얼거리는 꽃길이다. 그 곱디고운 꽃의 융탄자를 밟고 올라가는 길은 그림에 담았던 오른쪽 측면의 절벽을 넘는 길이다. 

그 절벽을 오르는 길은 점점 고도가 높아져 꽃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잠들어 있는 아가들을 깨우지 않으려 황매산 정상으로 달음에 올라간다. 바위들로 조각되어 있는 정상부엔 위험하게 사람들이 매달려 있고,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그득하다. 사람들의 정상 탈환의 욕망들이 넘쳐 보여 정상석 사진만 멀리서 조용히 찍고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져 따뜻해 보였다. 

나무계단을 돌아서자 보이는 것은 '황매평전'의 진분홍 연두 바다. 

도대체 이산은 철쭉으로만 이루어져 이렇게 아름다운 부감의 천국을 선사하는 걸까?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더욱 가까워지는 그 바다에 풍덩 빠져든 기분이다.

'어푸어푸' 못하는 수영을 하듯 조금씩 더 내려가자 바닷바람보다 더쎈 '산골 바람'이 휘몰아친다. 

걷잡을 수 없는 그 바다에 몸을 지탱하기 힘들다. 바람에 밀리길 여러 차례, 제단이 있는 하단부로 움직인다. 제단과 황태산이 어우러져 마치 아름다운 태평양 어느 섬에 있는 산처럼 여겨진다. '황매평전'을 가로지르니 바람이 더욱 거세져 몸이 밀리면서 모자와 안경이 한꺼번에 날아간다. 

간신히 날아가는 모자를 잡았는데 안경은 놓쳐버렸다. 안경이 없으니 세상은 밝아 보이는데 초점은 하나도 맞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그 태풍 속에서 안경을 찾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아, 이대로 하산을 하자니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 사고를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해서 지나가는 분들께 도움을 청하니 도움을 주시겠다며 적극 찾아주신다. 그렇게 암흑의 세계가 나의 마음을 지배하기 20여분.... 

'찾았다' 

아주머니 한 분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하이톤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눈이 좋지 않은 분들은 이해하리라.. 암흑에서 바뀌는 천국의 세상을, 뒤돌아보는 산의 매력이 아까보다 더 터지는 것 같아 흐뭇하다. 역시 산을 다니는 분들은 검증된 선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모자를 접어 넣고 바람을 피해 최소의 짐으로 만든 뒤 '산불감시초소'로 오른다. 

이산은 철쭉을 위해 태어난 산인 듯 부분 부분 절경이 엄청난 매력들로 보인다. 아름다운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차로 쉽게 오를 수도 있다. 그 부분이 이산의 장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하다. 

관광지인 듯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즐기고, 나 역시 그 끝없을 것 같던 드넓은 꽃의 바다에서 헤어 나와 '모산재'를 거쳐 '덕만주차장'으로 내려온다. 

내려가는 길은 그 아름다움에 주체할 수 없이 벌떡이는 나의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시 녹음으로 빛으로 가득 채우며 마치 첫사랑으로 순수한 경험을 한 듯 뿌듯하고 간지럽다.  



2017,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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