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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Jun 05. 2017

풍납토성, 어릴 적 그 공간의 시원한 바람

풍납토성, 풍납시장, 백제토성, 위례성, 낮달, 재래시장, 야채곱창 

http://cafe.naver.com/hongikgaepo


중학교 때 울 아버지는 옷가게를 하셨다. 

풍납 도깨비시장에서 하셨는데 아버지가 옷가게를 하실 때 가끔 심부름을 하기 위해 불려 갔다. 

불려 가서 시간이 남을 때면 '풍납토성'에 올라가 커다란 나무에서 바람을 쐬며 쏴~쏴~바람을 맞곤 했다. 

그 바람을 못 잊어선지 내겐 하나의 잊히지 않는 이미지가 되어 남아있었다. 

그 묻어 두었던 이미지를 찾아 느지막이 '풍납토성'을 찾았다. 





백제의 유적인 '풍납토성'은 이제 울타리가 만들어져 가까이 접근하긴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그 주변의 나무를 통해 그 시간이 묵묵히 지나왔음을 알 수 있다. 성위에 자라던 아름드리나무는 정리되었는지 이제 보이지 않고 주변에 나무들은 그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고 있는데 군데군데 베어진 나무의 흔적이 보인다. 

밑동을 살펴보니 그 나무가 족히 50~60년은 되어 보이는데 베어져 버려 무척 아쉬웠다. 

조금 더 돌아가니 은행나무의 냄새에 대한 민원이 있어서인지 그 또한 베어져 있다.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처리하는지 몰라도 수십 년의 세월이 그렇게 함부로 소리 없이 도륙되는 현장을 보니 아쉬움과 한숨이 교차한다. 

베어진 나무 옆 단단히 서 있는 은행나무 위로 나무의 영혼 같은 낮달이 떠있다. 

그 달을 보자니 그렇게 선명한 하늘도 오랜만이고 계절이 낮달이 보일만큼 청명한 서울 하늘도 감사하다. 

아픔에도 시원한 바람이 쏴~쏴~분다. 

자동차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달과 토성과 나무를 그린다.  




조금 더 지나가니 '풍납시장'이 나온다. 

아버지와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묻어있는 곳, 그곳에서 처음 보는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편의점에서 하나 값도 안 되는 가격에 여기선 두 개를 먹을 수 있다. 역시 재래시장이 최고다.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며 과거와 많이 달라진 시장 구경을 한다. 

지방에 가면 제일 최고의 구경거리 중 하나가 시장에서 밥 먹거나 찬꺼리 사는 거다. 

그런 지방에서만 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서울에서도 그런 묘미가 있다. 시장에는 과일가게부터 횟집, 반찬가게, 닭갈비집, 순댓국집까지 많은 가게가 있지만 제일 발길을 잡는 곳은 '야채곱창가게'였다. 그 달콤하면서 독특한 고기 향에 발길을 멈추고, 집에 가서 먹을 요량으로 싸가려 기다린다. 

동네분들의 줄이 있어 십오 분쯤 기다리다 맛있는 곱창을 받아 든다. 




조금 더 들어가니 가게 앞에 펜스가 쳐져있는 건물들이 있다. 가게에 사람도 짐도 없고 철 담장으로 막아버렸다. 유치권 행사할 때 보면 저렇게는 안 했던 것 같아 자세히 살펴보니 문화재가 발굴되어 보상을 받고 나가게 된 가게들이었다. 갈등이 꽤 있었을 텐데 잘 마무리된 결과이길 바란다. 


시장을 갔다 되돌아 풍납토성의 연장길을 따라간다. 

길이 토성으로 인해 화려한 공원 같은 역할을 한다. 끊어진 성길은 도로로 가로지르지만 토막난 토성은 그 자리를 묵직하게 지키고 있다. 풍납토성이 한때는 단순 방어용 성이라는 의견이 우세하였으나 현재는 왕궁의 유물들이 출토됨에 따라 백제의 '위례성'이라는 설이 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런 그 성의 외곽을 따라 걷는 길은 '경주'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역사적 감정을 갖게 하고 있다. 

가는 길에 한편에 핀 '접시꽃'이 흙담으로 만들어진 성의 모습에 서정성을 담고 있고, 낮에 봤던 달은 밤이 되어 제 자리를 찾은 꽃병처럼 환하게 그 자리를 비추고 있다  



201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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