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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Oct 26. 2017

수원 농악 '오방기 깃발' 그리기

청룡, 백호, 주작, 현무, 황룡, 깃발, 풍물, 풍물패, 꼭두

http://cafe.naver.com/hongikgaepo

  



나의 대학생 시절 풍물패 선배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페이스북으로 얼굴만 보며 어떻게 사시는지 간간히 보기만 하다가 20여 년 만에 페이스북 메신저로 무언가 메시지가 와 있다. 핸드폰 용량 부족으로 메신저는 하지 않고 있어서 늦게 노트북을 통해 확인해 보니 작은 깃발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냐는 메시지였다. 

그것도 황금연휴 첫 들머리에....




고민하다 얼마 크지 않다는 이야기에 날짜만 잡아놓고 전전날 물감 구입 문제로 사이즈와 개수를 물어보니 동네 놀이터가 잠실 야구구장으로 변해버린 놀라움이다.

충격이 가신 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물감을 구입한 후 휴일의 첫 들머리를 수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맡는 악기 냄새가 몸을 근질근질거리게 했지만 펼쳐져있는 천의 크기와 개수로 오늘 하루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시작될지 알 수 없었다.   

퀸사이즈 침대보다 더 큰 천 7개를 받아 들고 그 큰 크고 큰 천으로 덮고 잠이나 자버릴까 잠시 머릿속에만 생각해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양심이 있어 풍물패 식구들 세 분이 지원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큰 그림은 온몸을 이용해 그려야 한다. 

덕분에 그림을 그리면 온몸이 뻐근해서 다음날이 되면 누구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기분이 된다. 

같이 하시는 분들이 미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이라 그래도 진행은 생각보다 빨리된다.  

사이즈가 오방기는 190*140 깃발은 110*280이다. 

깃발은 앞뒤를 만들어야 해서 두장을 똑같이 그려야 한다. 

외곽에 단청문양처럼 라인을 넣기 위해 정확히 비례를 재서 외곽 형태부터 그려 넣는다. 

그러면 꼭두 식구들이 오방색을 칠 해 넣기 시작하고, 나는 다시 도망가듯 다음 작업을 위해 스케치를 한다. 

5방 동물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황룡'이 다 나보다 커서 타고 다니고 날아다니고 기르고 싶다. 

안 되겠다. 이 친구들 먹는 게 장난 아닐 듯싶다. 

꼭두 식구들이 더 많아져 진행이 더 빨라진다. 

그럴수록 내가 더 바빠진다. 

붓의 개수가 많아져야 이 거대한 방 크기의 깃발 7개를 끝낼 수가 있다. 

전체적으로 위치와 윤곽만 잡고 '백호'부터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커다란 붓으로 먹을 쓰듯 집중하니 윤곽이 나타난다. 

시간이 자정을 넘겨 전체 양으로 보니 절대 오늘 마무리할 수 있는 양이 아니다. 

앞으로 구체적으로 그려야 할 '용'의 개수만 4마리다. 

'주작'은 시작도 안 하고 '현무'는 간신히 외곽만 떠놓은 게 다다. 

하지만 오늘은 정리하고 연휴의 끝 일요일에 다시 모여 그리기로 한다. 

다음에 끝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 긴 추석 연휴가 휙 지나가고 다시 깃발을 그리기 위해 '꼭두' 연습실에 모인다. 

그 사이 단장님이 조금 진행을 해놓으셨으나 갈길이 너무 멀다. 

그 길을 가기 위해 내가 앞서 나아가지 않으면 뒷사람들도 쳐져서 힘을 내지 못한다. 

열심히 제일 큰 '황룡'부터 모양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모양이 잡혀가니 학교 시절 상장고 정화와 참이형의 딸이 와서 도와주기 시작한다. 

칼 같은 공대 출신 뫼솔형의 보조로 들어가서 뫼솔형의 색칠을 더 바르게 세워놓는다. 

초등학생도 요즘은 실력들이 대단하다. 

첫날 도와주었던 식구들을 비롯해 더 많은 꼭두 식구들이 총출동해서 속도가 붙기 시작해 첫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황룡' 다음 '주작', '현무', '청룡', 깃발에 있는 '청룡', '황룡' 각 두 마리씩 네 마리로 스케치를 구체적으로 해가며 완성해간다.

 역시 조금 더 진지해지니 더 시간이 빨리 간다. 

꼭두 식구들의 붓질이 만들어낸 '황룡'이 얼추 되고, 나머지를 완성하려니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점점 말이 없어지며 진지하게 마무리를 해간다. 

침묵의 시간이 이어지다 벌써 저녁,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할 때는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맛난 밥을 먹고 다시 전투 모드로 변신, 마지막에 시간이 모자라 디자인과 이바구를 담당하던 은솔형까지 나서 청룡의 비늘을 만들고, 뫼솔형의 현무 마무리와 단장님과 꼭두 식구들의 주작과 깃발의 용 마무리로 새벽 4시가 되어 전체 윤곽을 바라보고 정리하고 올 수 있었다. 






드디어 첫 공연의 날, 바람은 불고 깃발에 지네발이 달리어 그들의 모습이 다 갖추어진 그날, 수원 농악의 시작은 그렇게 나부끼었다.  




https://brunch.co.kr/@2691999/214




2017,9,24~1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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