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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Dec 18. 2017

뇌를 얼려버리는 칼바람의 비로봉 소백산

천동리, 천동계곡, 대궐터, 주목군락지, 비로봉, 어의곡, 눈 산행

http://cafe.naver.com/hongikgaepo


요 며칠 날씨가 칼날이 선 듯 매섭다.

새벽, 추위에 얼어버린 한 생명을 보며 잠깐 생각에 잠긴다. 

얼어버린 육신을 두고 좋은 곳으로 날아가길 빌며, 입김을 추스른다.  

버스를 타고 밖을 내다보니 겨울의 한가운데 우리가 와 있는 것 같다. 

연기가 뭉쳐 피어오르는 걸 보니 한겨울이 맞다. 




'천동리'에 도착해 오르다 보니 계곡 얼음 밑으로 '꿀떡꿀떡' 핏줄이 흐르듯 물이 흐른다. 

산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다리안 폭포'를 지나 연화봉까지 7킬로미터, 보통 정상으로 오르는데 3~4킬로인걸 생각하면 우리나라 최고봉인 '한라산'을 오르는데 걸리는 거리다. 

다만 길이 완만하고 계곡이 아름다워 심심치 않게 올라갈 수 있다. 

4킬로쯤 왔을까?

'대궐터'가 나온다. 말이 '대궐터'지 민비 관련해 도움을 준 사람들의 거처라고 하기도 하고 설이 많다. 

하얀 길을 따라가다 '조릿대'가 눈과 어우러져 운치 있다. '주목'이 서 있는 데크에서 능선을 바라보니 굽이굽이 아름답다. '주목군락지'에서 눈과 어우러진 주목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바람을 피해 밥을 먹는다. 

거의 정상부라 바람이 장난 아니다. 그냥 안 먹고 내려갈까 생각도 했지만 공식적인 첫끼라 물을 붓고 기다리는데 너무 추워 김이 나던 물이 다 식어버렸다. 식어버린 물에 김밥까지 먹으니 더 차갑지만 위를 타고 내려가는 허한 속을 채워주는 음식이 고맙긴 하다. 

조금 올라가 왼쪽으로 보이는 소백산 '비로봉'이 아름다워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먹물을 꺼낸다. 

먹물을 열려고 뚜껑을 치자 단두대에 목이 잘리듯 뚜껑이 날아간다. 

얼어 있었나 보다. 

먹물을 따르고 붓을 꺼내는데 그새 먹물이 얼음으로 변해 있다. 

붓을 물에 담그니 물이 얼어 붓이 굿는다. 

이 마법 같은 강추위에 내가 무얼 하고 있나 싶지만 그대로 얼음을 긁어 묻혀 흔적을 남긴다. 

오래 서 있을 수도 없어 한 획 긋고 손 녹이고를 반복하며 20여 분 만에 흔적만 남기고 정리한다. 









정상 '비로봉'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얼굴이 땡땡 얼고, 콧물까지 고드름으로 얼어서 딱딱한 입으로  

'위에 언청 추워요..'

하는데 잠시 공포를 느낀다. 

삼거리까진 나무가 있는데 그 위로 나무도 없고, 바람만 엄청나다. 

기대했던 '상고대'도 '눈꽃'도 없다. 

몸이 계속 휘청휘청 움직이며 오르는 사람이나 내려가는 사람이나 '살인사건'을 발견한 듯 정신이 없다. 

간신히 올라선 '비로봉'에서 바라보는 굽이굽이 능선은 장관이지만 그 장관을 보고 느낄 정신도 없다. 

아무리 추워도 이렇게 정신을 날려버릴 정도로 추우니 사람들이 오래 서 있지 못하고 '정상석'에서 사진만 찍고 흩어져 버린다. 

아까 가져온 지도를 보니 '어의곡 주차장' 방향으로 돌아 내려가게 되어있는데 이정표를 보니 '국망봉' 방향은 있는데 '어의곡' 방향이 안 보인다. 올라오시는 산을 잘 타실 듯한 분께 여쭤뵈니 그분도 손사례를 치고 가시고, 다시 여쭤본 그분이 '국망봉 방향'으로 가서 왼쪽으로 꺾어진다고 이야기해 주신다. 

'국망봉'으로 가는 데크 능선길에 맞바람이 불며 머리가 쨍하며 뇌가 얼어버린 고통을 느낀다. 

바람에 밀려 걷다가 밀려갔다 정신을 못 차린다. 

무조건 달려 양갈래 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간다. 

내려가길 100미터 300미터 500미터 그 면도칼 같던 바람이 잦아든다. 

얼었던 뇌가 녹아들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무릎과 발가락과 손가락에 얼음이 꽝꽝 들어 있는 것 같아 조금씩 녹이며 내려간다. 

시계를 차던 왼손은 시계 차던 부위가 얼어버려 느낌이 없는 것 같다. 

그대로 그 부위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말로만 듣던 소백산 겨울 칼바람을 맞으니 정말 혼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것 같다. 

정말 손 매운 여자 친구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며 헤어진 매서움과 아쉬움이다 




























내려가는 길에 쭉쭉 뻗은 나무를 사이로 눈이 하얀 도화지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아 나무라는 연필이 그림자란 선을 긋는다. 

그 그림을 감상하며 조용한 도화지에 발자국을  남긴다. 

적막 속에 공기까지 하얗게 느껴진다. 

하산길 방향은 음지라 눈이 깊게 파인다. 

조용한 사색의 시간이 두 시간 정도..

목적지인 '어의곡 주차장'에 도착해 눈에 푹 담겨온 장비들을 추스르며 정신을 차린다.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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