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연 Sep 07. 2015

걸어가는 섬, 누에섬

대부도 탄도 항에 있는 누에섬에서  제부도 바라보기

http://cafe.naver.com/hongikgaepo 

                

다시 이렇게 대부도를 밟을지 몰랐지만 헤어진 남자 친구가 미련이 많이 남아서 다시 전화 건 못난 상황이라고 해도 좋고, 헤어지고 다시 당신이 보고 싶어 밤늦게 찾아가 창문가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만큼 당신에게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빠져 있었나 보다.    

누에섬은 123번 버스를 타고, 대부도 끝자락에 내려 물때를 맞춘 후 한참을 걸어야 나오는 아름다운 섬이다. 대부도의 수많은 부속 섬들이 있고 그중에 구봉도, 쪽박섬, 메추리섬 등 많은 섬이 있지만 그중 최고의 풍경을 선사하는 서울로부터 배를 타지 않고 가는 섬은 누에섬이 단연코 최고일 것이다.    

원래는 물떼를 잘 맞추어야 들어 갈 수 있는 섬인데 오늘은 행운에 빌어 갔는데 다행히 물은 나의 편이었다. 대부도를 달리는 버스는 곳곳에 짙게 익은 포도향으로 코끝을 유혹했고, 낮에도 솔솔 불어오는 바람은 이제 계절이 바뀌었음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버스에서 바라보는 곳곳의 지명들은 귀에 눈에 익숙한 곳들이 되어 버렸는데 그렇다고 그 곳들이 신선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색, 다른 소리, 다른 냄새로 나를 반겨줄 것을 확신하고 있다. 탄도항에 내려 풍력발전기 세 개를 지나치는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웅웅 들리고, 밑에 건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하얀 철강보호대는 공룡의 뼈와도 같았다.

가는 길 내내 주말을 보내러 온 아이들은 게를 잡고 망둥어를 잡으며 길을 건너가지 못했다.

나는 그들과 섞여 있는 게 조금 부담되어 빠른 걸음으로 섬의 입구를 지나쳐 길의 끝에 다다렀다. 그 끝에서 바라본 바다는 경주 남산의 ‘운주사 천불 천탑’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굴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바위와 돌조각들이 멀리 녹색 은색 바닷물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쓴지 얼마 안된 스케치북을 꺼내 그려나갔다.

이번 스케치북과 내가 친해지려면 또 얼마 만큼의 어색한 시간이 있어야 할까?

매번 스케치북과의 만남은 새로운 진지한 사람과의 만남 같다.

다른 종이 색과 종이 질감과 종이 두께에 조금 어색하지만 금세  익숙해지리라 믿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른 색깔의 사람들과 내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먼저 다가가서 익숙해지면 확연한 내 사람들이다.

물론 비닐과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럴 땐 내가 유성매직으로 변신해야 하는 거지.....    


섬에서 바라보는 섬 풍경과 바다를 그린 후 ‘등대 박물관’으로 올라갔다.

이만큼 시원한 바람이 불 수 있을까?

제주 우도 등대에서 느꼈던 바람을 다시 여기 대부 누에섬에서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 시원한 바람에 ‘제부도’를 포함한 수많은 섬들의 풍경이 딱!

도대체 나는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 어디를 그렇게 멀리 헤매고 다녔던 걸까 싶을 정도로

가슴이 뚫리는 풍경이었다.    

한쪽으론 저 멀리 충남 당진에는 비가 내리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고,

한쪽으론 작년에 가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던 덕적도의 아름다운 모습과 서해 섬들의 다양한 풍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느낌들을 놓치기 싫어 제부도를 보며 스케치 북에 박아 낸다.

그림을 그리고 있자니 하늘이 찬연한 빛과 색의 쇼를 한다.

잠깐 들러 둘러보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아름다운 매직쇼다

그림을 그리고 아니 자꾸 그리면 그릴수록 초라해지는 그림을 만들다 그냥 자리에 앉아

덕적도 방향으로 생기는 빛의 정원에 은빛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그냥 쳐다만 본다.    

어쩌면 우린 천국에서 지옥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쉬운 맘을 뒤로 한 채 섬의 중심으로 산행길이 있다. 5분 정도 걸어 산의 꼭대기를 찍고 내려간다.  저녁 노을을 찍으러 출사 온 사람들이 길 위에 포진하고 있다. 그들이 없는 다른 곳에서 찍어야 한다는 내 삶의 불편한 고지식함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본 바위섬 두 개 쪽으로 방향을 튼다. 거기서 섬 사이로 떨어지는 태양의 불구덩이를 본다. 태양이라는 붉은 열매는 사라져 갔어도 그 흔적이 아쉬워 자꾸 카메라를 눌러 댄다.


멀리서 카메라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한 사람

나를 모델로 사진을 찍는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마추어 사진작가,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그에게 과자를 건네며  

검게 타 버린 하늘은 남겨놓고 온다.          





2015.09.06


https://brunch.co.kr/@2691999/308


매거진의 이전글 영흥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