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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Sep 21. 2015

'강화도','고라니'와 함께 한 유적마을

강화도 나들길 18코스 왕골공예마을 가는 길

http://cafe.naver.com/hongikgaepo

아침이 늦었다. 어제 본 영화 때문에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베스트 오퍼‘라고 그림과 골동품 감정하는 늙은 남자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무지함을 이용해 그의 소장품들을  도둑질해 가는 유쾌하지는 않은 내용의 영화인데 상당히 몰입이 되어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많이 늦게 시작했다.    

서두르고 서두르니 그런대로 빨리  진행되어 강화도 고인돌 박물관에서 시작하는 18코스 길을 걷기  시작할 수 있었다.

잠시 ‘자연사 박물관’에 기웃거리다가 자연사 박물관의 알찬 전시물들을 보고 그간 보아왔던 신기한 생물들의 이름들을 알게 되었다.

산속에서 나를  놀라게 하였던 빨간 게의 이름이 ‘도둑게‘였단 것도....    

‘다송천‘을 따라 걷기 시작해서 자연이 어우러진 강화 남부의 들길을 따라 가는데 길 한쪽 편 산자락에 무언가 ’바스스’ 소리를 낸다.

“뭐지? “ 하고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데 무언가가 튀어 오르기 시작한다.    


‘고라니 새끼닷!’    


처음에 너무 작아서 토끼가 아닌가 싶었는데 작은 고라니 새끼가 높이 뛰기도 하고, 날기도 해서 도망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녀석을 따라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 녀석은 눈치를 보며 계속 나를 피해  도망가다가 도랑의 물이 있는 막다른 길에 도달해 수풀에서 조심히 멈춰 섰다. 그러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뛴다. 나 역시 사진 욕심에 같이 따라 뛴다.

그렇게 왔다 갔다를 왕복 두 번 뛰고 나서 고라니도 지치고, 나도 지치고.....

그렇게 검고 사랑스러운 눈을 본 적이 없었는데,

수풀에서 조용히 있는 녀석에게 인사를 하고, 조용히 거친 숨을 가라앉혔다.    

‘사랑스런 녀석, 엄마 꼭 찾아가라‘    


시골 마을 어디에나 있는 교회와 성당을 지나쳐 산으로 올라가며 강화 ‘고 가옥’ 앞에 선다.

집이 무척 예쁘다. 이런 집에서 살아도 좋겠다 싶을 만큼, 그런 그 집 앞에서 스케치북을 펼친다. 그림에 집들이 다 차지 않아 뒤쪽으로 뒤쪽으로 가다 보니 수풀이 우거진 벽에 붙었다.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아디다스 무늬의 산모기 집을 건드렸는지 모기들의 양이 장난 아니다.

하지만 그 집을 그리고 싶은 욕심이 생겨 모기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감을 스케치북에 발라낸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자리를 옮겨야 하는 엄청 좁은 길이지만 그 풍경은 그런 희생들을 감수하고 그리고 싶은 아름다운 시골 정경이었다.    


너무 늦는 것 같아서 서둘러 ‘오 층 석탑‘을 둘러보고 ‘봉천산‘에 오를까 고민하다가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단 생각에 남겨놓고 ’석조여래입상’을 보러 길을 재촉한다. 석조여래입상은 주변 문을 공사 중이어서 조금  어수선했지만 그 부드러운 표정과 자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근데 이 보물들은 이렇게 관리가 안 되어도 괜찮은 걸까?'

어제 봤던 영화의 유물들을 떠올리며 내심 걱정이 된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많은 전원주택이 여기저기 길 따라 만들어져 있다. 그 길 사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쪽에서 무언가를 따고 있다.    

‘밤이다‘     

할아버지는 밤을 따고 할머니는 밤 속에서 밤알을 골라내었다

인사를 드리니 아직 덜 여문 밤을 장대로 쳐서 주시며 다 익은 건 벌레들이 다 먹어서 약간 덜 여믄게 먹기 좋다고 조언해 주신다.

인사드리고 아이들에게 보여줄 심산으로 가시가 달린 통째로 잘 주워 담는다.


길을 따라 가다가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자원봉사하시는 분께  전화드리니 다시 길을 되돌아가란다. 되돌아가니 양오 저수지가 저 멀리 오아시스처럼 자리 잡는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오아시스를 보며 걸어가는데 물컹하는 걸 밟았다.

길가에 토실해 보이는 뱀이 죽어 있는데

아마도 길을 건너다가 로드킬 당한 것 같다.    


마을로 내려가며 ‘화문석 문화관‘에 다다르니 날이  어두워진다. 아직 3분의 1이 남았는데...

걱정이 되지만 어둠 속에서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길을 찾아간다.

‘다송천‘에 다시 이르고 어둠의 마을을 지나다가 산길로 가는 ’나들길‘을 피해 밝음이 남아있는 마을길로 돌아간다. 이제 계절이 낮이 짧아지는 계절이라는 걸 새삼 다시 느낀다.

어둠 속에 등장하는 집들의 모습들과 산들의 모습들도 이제 친근하게 다가온다.    

‘강화 지석묘‘가 있는 역사 박물관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다음에는 역순으로 다시 한번 돌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강화순환버스를 탄다.    


201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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