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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Jan 02. 2016

새해 첫날, 첫 일출 눈 산행 '설악산'

걷는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http://cafe.naver.com/hongikgaepo           

1월 1일,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날 게으르게 자고 있던 해는 그해가 정말 게을렀던 것 같고, 그날 부지런을 떨었던 해는 정말 한 해가  부지런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게 미신 일지 아니면 자기암시 일지 모르지만 그 경험은 한해 첫날만이라도 부지런하게 살게 해줬다.

그 경험을 전제로 나의 2016년 1월 1일은 처음 겨울에 가보는 '설악산'의 모습이었다.

'한라산'에도 가보고 '덕유산'에도 가봤지만 ‘설악산’ 겨울산의 민낯은 처음인 데다가 일출을 보러 가는 산이라 얼마나 차가운 바람이 불어 대고 얼마나 고통스러운 걸음이 될까? 걱정이 앞섰지만 한참이나 어린 친구들이 자신 있게 움직이는걸 보고, 걱정은 사치로운 것이 된 것 마냥 유치해졌다. 어둠 속에서 신화 속에 나오는 ‘해의 신’을 맞이하는 것 마냥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가슴에 손에 랜턴을 들고 장착하고, 신을 맞이하는 신전을 향해 힘차게 올라갔다.   


오색에서 가는 길은 설악의 정상 '대청봉'으로 가는 가장 짧은 시간의 길이지만 계단이 많고 금세 지치기 힘든 경사가 급한 곳이라 쉬엄쉬엄 가지  않으면 금세 지친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고독한 바람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얼음사이의 물소리뿐....

오색 초입은 늦가을의 산같이 썰렁하더니 초입을 넘어서자 조금씩 눈과 얼음에 미끄러져 하나 둘 아이젠을 차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다시 맨바닥.. 나는 조금 더 가서 장착하기로 맘을 먹고  쉬엄쉬엄 올라간다. 중반을 지나 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저 맑은 별들은 이제 서울이 아닌 특별한 곳에만 존재하는구나.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는다....

물소리를 통해 '설악폭포'를 지났다는 걸 알아채고 바닥이 점점 눈으로 쌓여가니 정상에 가까워짐을 느낀다. 설악산의 설은 눈설이라더니 역시 밑에는 눈이 없어도 정상에 가까워지니 눈의 깊이가 장난 아니다.. 아이젠을 장착하고 둘러보니 한쪽 하늘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간다. 한편으로는 하얀 산이 굽이굽이 보이고 그 주변으로 구름들이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어 준다.

정상에 도착해 얼어버린 손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다가 두껍게 쌓인 눈밭에 발이 빠져버린다. 발이 허벅지까지 빠져서 간신히 뽑아낸다. 산밑을 둘러보니 바다와 바다도시가 보이고 반대쪽으론 끝이 없을 것 같은 산의 능선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이미 많이들 올라와 인산인해를 이룬다.

드디어 7시 40분 아니 약간 더 일찍이었던 것 같다.

빠알간 해가 혀를 내민다.

정말이지 그렇게  빨간색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 수 없을 것처럼 아주 빨간 해가 바다 넘어에서 올라온다.

아, 이렇게 깔끔하게 바다에서 올라오는 해돋이를 본 적이 있었던가?

감동의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면서 무아의 상태가 된다.

저 붉은 빛을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일출의 아름다운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사람들은 얼어버린 몸을 녹이기 위해 '중청 대피소'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사진을 찍어대며 이동해서 지인들에게 이 감동을 나누기 시작했다. 참치캔 한통을 넣은 사발면으로 든든한 아침을 해결하고 오늘의 다음 목적지인 '천불동 계곡'으로 가기 위해서 다음 중간 기착지인 ‘희운각 대피소‘로 이동했다.

눈바람이 휘날리며 산의 정상은 아름다운 비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보여주고 있었고, 그런 비경을 감상하며 오늘의 선택을  뿌듯해했다.

눈밭을 지나 하산 길은 상당히 경사가 있었는데 그 좁은 하산길은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눈썰매를 타듯 미끄러져서 가야 하는 길이었다. 무언가 돌덩이가 나타나면 엉덩이를 살짝 들어주는 센스를 보여주어야만 하는 산 정상에서의 ‘엉덩방아 썰매‘였다.


바위의 틈새 틈새를 지나 평소라면 한 시간에 갔을 거리를 2시간이 걸려 '희운각  대피소'까지 도달했다.

거기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내려가니 '공룡능선'과 '천불동'으로 갈리는 교차로가 나온다. 오늘은 천불동 계곡의 아름다운 조각 같고 병풍 같은 산세를 감상하기로 했으니 고민 없이 천불동 방향으로 하산한다.

작년에 낙석사고로 한참을 갈 수가 없었던 ‘천불동 계곡’은 아름다운 기암괴석을 양쪽으로 두고 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냥 가자니 햇볕도 따뜻하고 눈이 많은 지대도 지나고 해서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산세가 마치 아바타에 나오는 신비로운 산의 모습들이었다.

나무가 잎을 떨구고 나니 바위의 자태가 이렇게 드러나는구나 싶었다.  

스케치를 끝내고 전에 없던 이제 생긴듯한 ‘양폭 대피소‘를 지나 천불동 계곡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다 한참을 걸어 ’ 비선대’에 도착, 완만한 길을 걸어 사색을 하며 2016년을 그렇게 시작했다.    


2016년 새해를 맞이하며, 저를 아는 모든 분들께 행운이 가득하고 소원하는 일들 다 이루어지시길 빕니다.... 설악산 정상에서 김태연     201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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