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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Nov 22. 2021

냉장고 2 -오호! 통재라 냉장고를 보내며....

냉장고, 실존, 냉장고 고장, 음식 저장, 이별, 부패, 음식, 수필




난 어떤 사실감을 받아들이기에 조금 여파가 오래가는 사람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빨리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냉장고에 대한 미련을 한참 부여잡고 냉장고가 없음에 대한 슬픔에 뒤따르는 현실적인 불편함들이 하나둘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불편함에 대해 서술하자면 일단 안에 있는 내장과도 같은 묵은지와 김장 때 담근 열무김치와 젓갈과 된장 고추장과 내놓는데 며칠 만에 식초물이 되고, 초파리가 꼬이기 시작하며, 책상 위에 진열해놓아 집이 마치 구석 사람이 없는 인기 없는 황학동 벼룩시장 좌판이 되어버린다.

계란은 겉으로 멀쩡해 보여 내어놓으니 안에서 단백질이 검은 물로 변해버리는 괴기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일단 냉장실에 있는 음식과 식재료의 상황이 이런데 냉동실은 더 끔찍하다.

바로 해 먹지 못하는 것들은 특히 고기류는 흐물흐물해져 바로 음식물 쓰레기통이나 변기로 직행이다.

생각해보면 보물처럼 냉장고 깊숙이 저장해 놓았던 것들은 한순간 변질되어 구더기가 들끓는데 음식에겐 안 좋은 상황이나 사람이나 동물에겐 구더기의 힘을 빌려야 흙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물론 그 상황을 기피하기 위해 '화장' 이란 기술적인 제도가 생겼지만....



여하튼 음식 이야기를 마저 하면 자꾸 '네팔 카트만두'에서 '모모'를 사 먹었을 때 씹던 고기들이 생각난다.

냉장고가 귀한 동네라 고기를 썰어 리어카 위에 놓고 팔았는데 살덩어리들이 싱싱(?)해야 먹을 수 있으니 그날 잡은 고기는 그날 팔아야 하는 듯 보였고, 그 옆집에서 순수 로컬만 가는 듯한 모모집에서 그 네팔식 만두를 먹으며 그 만두소에 대해 궁금했었더랬다.

우리나라 기계식 공장에서 만드는 깔끔한 내용이 아니라 씹히는 만두소가 질기기도 했고, 돼지고기 껍데기와 오도독뼈 내장 같은 잡고기들이 내 입안을 가득 채웠기에 먹으면서도 두려웠었다.

아니라 다를까 먹지 않던 종류의 음식을 먹어선지 화장실과 며칠 친하게 지냈는데 냉장고가 없는 공간에서의 음식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중국 쓰촨 지방'에 갔을 때 그쪽 음식이 맵고 짜고 단 이유가 사막 지대라 음식들의 부패가 일찍 와서 상대적으로 오래 보관이 되는 맵고 달고 짠 음식과 저장 음식들이 많이 발달되었더랬다.

더더군다나 살짝 상한 음식도 기름에 튀겨서 먹는 건 식중독에 민감한 사람들의 고육지책이었을 것 같다.



다시 우리 집 냉장고로 돌아오면 일 년간 넣어놔도 괜찮던 '냉동인간' 같은 고기들은 단 며칠 만에 사망하셨고, 채소와 과일들은 상처를 가지고 습한 지대를 건너는 병사들처럼 조직이 흐물해지며 전멸 중이었다.

당장 방법이 없어 다른 곳에서 공수해온 생수병에 얼린 얼음을 같이 두어 소중한, 어느 하나 소중한 것이 없겠느냐만 음식들의 정예부대를 붙들어 놓고 너무 늦었지만 냉장고를 섭외한다.


난 이렇게 무언가 누군가를 보낼 때 항상 느리다.

미련이 많은 미련한 남자다.

냉장고는 크게 양문형 냉장고와 단문형 냉장고로 나뉘는데 물류비는 딱 7년 차 중고 냉장고 값이다.

사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람이 중요해서 인건비가 비싼 건 당연하다 생각한다.

그 인건비 드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지..


그녀를 채우고 그녀를 보낸다.


그녀를 보내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다.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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