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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23. 2016

태곳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가리왕산

장구목이, 단풍취, 마항치삼거리, 어은동임도, 주목, 계곡, 밀림


산의 청정한 모습을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끼가 서식하는지 아니면 다 사라졌는지로 구분할 수 있다.

내가 오늘 찾은 '가리왕산'은 계곡이 온통 이끼로 이루어져 힘찬 물소리와 함께 다양한 식물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1월부터 5월까지 입산 통제되어있던 곳이라 고사리를 채취하지 않아 '고비'들이 천지로 피어있고, 나무들이 수백여구 쓰러져 있어 나무를 올라타기도 하고, 나무 밑을 기어가기도 하면서 밀림을 헤쳐나가며 거친 산행을 해야 했다.

그런 원시림을 간직한 '가리왕산'을 여행하면서 오늘 하루는 굉장히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사람의 손이 잘 닫지 않는 타국 열대 밀림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장구목이' 란 곳에서 여정은 시작된다.

밀림을 헤치고 찾아낸 곳은 폭포가 쏟아지듯 내리는 계곡, 그 계곡을 한참 바라보다가 시원한 바람이 허리를 감싸는 걸 느끼며, 물이 쏟아지는 걸 보고만 있다.

아마도 5월의 행사들 덕분에 오랜만에 하는 원정 산행인데다 감기까지 안고 있어서 쉽지는 않겠는데 이곳에 머물러 있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오늘의 높은 저 곳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뗀다.

임도까지 지도의 시간은 1시간 10분이 적혀 있지만 몇 년간 정리한 적 없는듯한 길에 쓰러져 있는 수백여 그루의 나무 덕분에 2시간을 훌쩍 넘긴다.

산에게 엎드리기도 하고 나무 여러 그루를  외나무다리처럼 타고 가기도 하고...

길가에는 '수달래 꽃'이 활짝 피어 있고, '고사리' 도 나무처럼 튼실하게 펼쳐져 있다.

'단풍취'라는 곰취 사촌 같은 나물을 채취하는 아저씨가 있어 여쭤보고 맛을 보려고 약간 채취해 본다.

맛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 산을 통해 배워가는 삶의 지혜 중 하나가 된다.


간신히 '장구목이 임도'에 도착해 가리왕산 정상으로 가는 수직 길로 속도를 낸다.

해발 1561이라는 '가리왕산'은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산이다.

그 산을 향해 올라가는 길에는 족히 수백 년은 되었을 고목들이 여기저기 산을 지키고 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도 군락을 이루며 정리되지 않은 밀림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산은 그렇게 거친 숨소리를 함께 내며 오늘을 역시 무심히 보내는 듯했다.

인류의 역사의 시간들은 그들에게 무의미한 것처럼....

하지만 인류는 동계올림픽이라는 그들의 평화를 가장한 게임을 위해 이 산의 일부를 깎아 내고 수백 년 된 나무들을 잘라내는 살육의 현장이 이 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니 사람들의 무지한 경제논리와 생각 없음에 마음 한편이 무거워진다.

정상에 다다를수록 고비는 점점 덜 피어 있고, 수달래 꽃은 수줍은 꽃봉오리를 맺고 있다.

고도가 높을수록 시간은 더디 가고, 시차가 생기는 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느끼는 자연의 진리다.

여긴 아직 봄이다.

정상에 오르기 전 도시락을 까먹고, 정비한 다음 정상에 올라 산과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는다.

산에 오르는데 4.2킬로 남짓에 4시간여 걸렸는데  내려가는데 6.5킬로 남짓을 2시간에 가야만 한다.

친구와 난 조금 힘을 내 하산길에 속도를 낸다.


'마항치 삼거리'를 지나 '어은동 임도'에 도착하니 3.5킬로

다시 도착지점인 '자연휴양림 매표소'까지 열심히 달린다.

하산은 지구의 중력이 도와줘서 훨씬 빠르긴 하지만 역시나 산길에 누워있는 나무들을 넘고 밑으로 기어서  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점점 소리가 짙어지는 계곡을 지나 산에서 쉬고 있는 부러운 사람들을 지나 간신히 시간 내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도착한다.

감기라는 큰 벽과 밀림 같은 산길 덕분에 쉽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이산을 다녀오며 복잡한 생각이 정리된다.

우거지고 밀림 같은 '가리왕산'은 우리가 잘 보존해서 남겨줘야만 하는 수많은 자연 개체들의 공간이다. 인류의 어리석음으로 더 이상의 파괴는 말아야겠다.


201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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