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사랑, 카구야 공주 이야기 (2)
인간과 외계인 공주 - 세기의 플라토닉 러브
by 사립탐정 진 앤 송 Mar 3. 2026
카구야 공주에게 구혼했던 모든 도전자들이 나가리 되자 흥미를 느꼈는지 천황까지 카구야 공주를 만나고 싶어 했고 만민 평등주의였는지 천황을 만나는 것도 거절했으나 불시에 찾아오는 바람에 카구야 공주는 모습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공주는 자신이 지상의 사람이 아님을 천황에게 밝혔고 천황은 카구야 공주와의 연애나 결혼은 포기했지만 사심 없는 진지함에 이끌렸던지 두 사람은 일종의 펜팔 친구가 되어 서로 시와 노래를 주고받으며 교제를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서로 인스타 맞팔을 하고 서로의 유튜브 채널에 구독ㆍ좋아요를 누르며 댓글도 달아주면서 친구로 지낸 지 3년이 되었는데 8월 보름이 다가오자 카구야 공주는 급격히 침울해졌고 느닷없이 저기압이 된 딸을 보며 노인 부부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카구야 공주는 그제야 자신의 정체가 지구인이 아니라 달에서 온 외계인임을 밝혔고 특별한 인연이 있어 지구에 왔지만 15일이 되면 하늘에서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며 고백했습니다.
(알고 보니 다른 <별에서 온 그대>였던 카구야 공주...)
이 말을 들은 노인의 아내는 곧 헤어지게 된다는 슬픔에 딸을 껴안고 둘이 함께 펑펑 울고 노인은 얼른 천황에게 카톡을 보내 딸을 데려가려는 외계인들을 막아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천황은 카톡을 확인하자마자 얼른 군대를 풀어서 카구야 공주의 집을 물샐틈없이 지키게 했고 공주의 방문 앞에는 타케토리 노인이, 방 안에는 카구야 공주와 노인의 아내가 같이 있었습니다만 달나라에서 내려온 외계인들 앞에서는 추풍낙엽이었고 아무도 감히 맞설 엄두도 못 낸 채 카구야 공주를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카구야 공주는 지구에서 사귄 유일한 남친이었던 천황에게 불사약과 날개옷, 그에게 특별히 바치는 시를 써주고 떠났는데 천황은 황제 체면도 다 버리고 펑펑 울며 <당신 없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 따위 필요 없다>고 불사약을 신하에게 주어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산, 그러니까 가장 높은 산에 가져가서 불태워 버리게 했습니다.
(그 산이 바로 후지산이고 이때 불사약을 태웠기 때문에 후지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게 되었다는 설화가 되었습니다.)
(천황이 카구야 공주에게 보내는 시인데 슬피 흐르는 눈물에 몸이 떠오른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카구야 공주가 떠나기 전에 천황에게 남긴 시)
이렇게 지구인ㆍ외계인 두 남녀는 사랑하는 마음만 간직한 채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카구야 공주는 천녀의 옷을 입자 지상에서의 기억조차 모두 포맷된 채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혼자 남은 천황만 사랑과 슬픔을 곱씹으며 남은 생을 보냈을 듯한데 현대 기준으로 봐도 매우 절절하면서도 가슴 찡한 로맨스를 담은 이 이야기는 이후 일본의 수많은 미디어와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 매우 유명한 작품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가 바로 미소녀 전사 세라문, 국내판 제목으로는 <달의 요정 세일러문>입니다.
등장인물들 명칭은 로마 신화 (* 그리스 신화 아님)를 배경으로 했지만 주인공인 세일러문은 카구야 공주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입니다.
본 탐정의 초등학생 시절에 방영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저 멤버들 중에 정작 주인공인 세일러문은 별로 인기가 없었고 왼쪽에 있는 세일러 머큐리와 세일러 마르스가 1, 2위를 다투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이보다 더 유명하면서도 거대한 세계관을 자랑하는 작품이 바로 마쓰모토 레이지 화백의 <천년여왕>입니다.
(아예 대놓고 타이틀에 <新 竹取物語> 즉 <카구야 공주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한> 작품이라고 붙여놓았습니다. 마쓰모토 레이지 화백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무척이나 유명한데 바로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이기 때문입니다.)
종말을 앞둔 세기말의 지구에서 라 메탈 행성이라고 하는 다른 세상에서 온 여인과 지구 소년의 가슴 찡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천년여왕>은 별로 관련이 없을 듯하면서도 <은하철도 999>와 이어지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천년여왕 유키노 야요이가 바로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메텔의 엄마인 프로메슘이기 때문입니다.
(왼쪽이 프로메슘, 오른쪽이 그 유명한 <메텔>입니다.)
(은하철도 999에서 프로메슘은 모든 인간을 기계인간으로 만들어 온 우주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는 <기계제국 여왕>으로 등장하는데 메텔과는 애증이 교차하는 모녀지간입니다.)
어릴 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메텔이 예쁜 것에만 눈을 굴리며 보았던 은하철도 999를 다시 보면서 그 앞뒤 세계관의 작품들도 극장판ㆍTV판 할 것 없이 찾아보다가 천년여왕까지 찾아보게 되고 그 원작인 카구야 공주 이야기까지 보게 되었는데 본 탐정에게는 동심을 되살려 가슴을 찡하게 해준 이야기, 여러분들께는 옛 시절의 추억이 될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