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사랑, 카구야 공주 이야기 (1)
인간과 외계인 커플
by 사립탐정 진 앤 송 Feb 27. 2026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전설과 신화, 설화, 전래동화 등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대표적인 콘텐츠 중에 하나가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와의 사랑>입니다.
당장 그리스 신화만 보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신과 인간이 눈이 맞아 영웅을 낳고 그렇게 태어난 반신반인의 영웅이 괴물들을 때려잡는 모험을 한다는 스토리이고 우리나라에도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이런 유의 근원이라 할 만한 원전은 다름 아닌 구약성경 창세기인데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난 천사들, 범죄한 타락천사들이 지구로 와서 마음에 드는 인간 여성들을 닥치는 대로 취한 뒤 초인간적인 거인들, 네피림들을 낳았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그 결말은 대홍수로 끝나고 인간과 이종족과의 혼혈은 성경적인 결합이 아니라는 교훈을 주고 있는데 어쨌든 <별에서 온 그대>와의 사랑과 연애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관심과 흥미를 끄는 콘텐츠가 아닐까 합니다. 오늘 소재가 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전래동화도 바로 하늘에서 온 공주가 인간세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원어로는 <다케토리모노가타리>라고 하며 한자로는 죽취물어竹取物語라고 하는데 뜻은 <대나무 장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스토리를 보면 대나무 장수는 크게 의미가 없고 그가 대나무를 베다가 주워온 여자아이인 <카구야 공주>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원래 제목보다 <카구야 공주 이야기> 또는 <대나무 공주>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무려 1,130년 전인 서기 890년 어간에 쓰여진 이 이야기의 스토리를 잠시 살펴보면 대나무를 잘라 바구니를 만들어 파는 타케토리 노인이 그날도 대나무를 베러 대숲으로 갔다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대나무를 보고 신기해서 베어 보았더니 그 안에 10cm 정도 되는 조그만 여자아이가 있어 얼른 데려와서는 딸로 삼아 키웠습니다.
물론 없는 형편에 딸자식 하나 키우려면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겠지만 아이를 데려온 후부터 노인이 베는 대나무마다 안에서 적잖은 돈이 나와 뜻하지 않게 양육비도 넉넉하게 벌 수 있게 되었지요.
원래는 조그만 크기였으나 (대나무도 아니고) 3일 만에 훌쩍 자라 아가씨가 된 딸은 이후 성인식을 치르게 되었고 노인은 신관 또는 무녀인 이무베노 아키타라는 사람을 불러 이름을 지어주게 했는데 워낙 미모가 빛이 났는지 아키타는 <빛나는 대나무 아가씨>라는 뜻의 나요타케노 카구야 히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히메>는 아가씨 또는 공주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평민 중에 상평민 딸내미 이름에 <공주>를 붙이다니 신분제가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절임을 고려하면 매우 이색적인 일이기는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성인식을 치르고 이름도 갖게 된 카구야 공주는 많은 손님들을 초대해 성대하게 파티를 열며 축하한 타케토리 노인 덕분에 제대로 유명해졌고 오래지 않아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남자라면 누구나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는 셀럽이 되었습니다.
사방천지에서 프로포즈와 청혼, 구혼이 폭주했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제대로 튕긴 덕에 많이들 나가떨어졌고 최후의 5인이 끝까지 도전장을 던졌는데 마침 나이도 당대 기준으로 오늘내일하는 70줄에 이르렀던 타케토리 노인이 <아빠 죽기 전에 내 딸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고 싶다>며 부탁하는 바람에 마침내 카구야 공주는 다섯 도전자에게 미션을 부여합니다.
참고로 과년한 딸을 둔 채로 병석에 누워 있는 부모님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 중에 갑이 <엄마 or 아빠 죽기 전에 내 딸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곧 세상을 떠날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조급하게 신랑감을 찾다 보면 신중하지 못하게 되고 이상한 남자를 만나 개고생을 하며 결혼생활을 망칠 확률이 다반사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혼자 남을 딸자식이 걱정되어도 속으로만 걱정하시고 괜한 헛소리 나불거려서 금싸라기 같은 딸내미 인생을 조지고 원망을 듣는 일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어쨌든.....
이시즈쿠리 황자에게는 부처의 밥그릇을 가져오라는 미션을
쿠라모치 황자에게는 신선이 사는 봉래산에 가서 옥으로 만든 나뭇가지를 가져오라는 미션을
아베노 미우시 우대신에게는 화산 속에 사는 불쥐의 털옷을 가져오라는 미션을
오오토모노 미유키 차관에게는 용의 머리에 있는 구슬을 가져오라는 미션을
이소노카미노 마로 차관에게는 제비가 낳은 조개를 가져오라는 미션을 부여했으니
(참고로 <차관>이라 표기된 두 사람은 대납언ㆍ중납언이라는 일본 차관급 직책의 대신입니다.)
이건 뭐 톰 크루즈가 와도 답이 안 나오는 진짜배기 <미션 임파서블>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결혼만 하고 보자는 심산에 두 황자와 우대신은 야매로 짝퉁을 만들어 와서 진짜라고 우기다가 뽀록이 나서 나가리되었고 미유키 차관은 진짜로 용이 사는 곳까지 갔다가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포기하고 마로 차관은 물건을 찾기는 했는데 가지러 올라가다가 추락해 허리를 다치고 말았습니다.
(이보시오! 탐정 양반....!!)
아시다시피 남자에게 허리란 매우 중요한데 그곳이 아작이 났으니 결혼은 하나마나였고 카구야 공주도 시를 써서 보내 위로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미션을 맡은 쿠라모치 황자는 3년이나 존버를 하며 카구야 공주를 거의 속여 넘기기 직전까지 갔다가 짝퉁을 만들어 준 기술자들이 오는 바람에 들통이 났습니다.
이렇게 이름처럼 <대가 센> 대나무 공주는 과연 누구와 맺어졌을까요?
- 2부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