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받은 편지

어른이 되고 처음이다.

by 방감자

퇴근하는 중 엄마에게 질 지내고 있냐는 카톡이 왔다. 여느 때와 같이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편지 받았냐는 말을 해서 다시 우편함으로 내려가 편지를 가지고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IMG_0891.JPG 유년시절의 방감자씨

편지를 열어보기 전에 심장이 심하게 뛰었다. 혹시라도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는건가 하며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조심스럽게 편지를 열어봤다. 첫 줄을 읽자마자 눈물이 나서 집으로 들어와 마저 읽어내려갔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아,
IMG_1020.JPG 해맑네 둘 다

꽤 오랜만이었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정도로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지가.

나도 안한지 오래됐고, 듣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부모님에게 무뚝뚝한 외동 아들로 여겨지는 것에 미안해졌다.

IMG_1019.JPG 울 아빠

사연없는 집안이 어디있겠냐만은 우리 집도 나름 사연이 깊다. 어디서도 쉽사리 얘기하지 못하는 이야기여서 가슴속에 묻고 살고 있는데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고 쉬시기 시작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셨나보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IMG_0887.JPG 뭐가 맘에 안드니

이런 저런 사연이 있었던 유년기가 지나고 셋이 살면서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자연스레 나는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다니며 지쳐갔다. 누구보다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했던 나에겐 학원은 지옥같았다. 왜 공부를 잘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시키는대로 다녔고, 목표도 없었고, 즐거움도 없었다. 지겨웠던 학원은 축구가 하고 싶어 땡땡이 친 거짓말을 들킨 이후로 그만 다녔다. 억지로 다녔던 학원덕에 상위권이었던 내 성적은 그만두자마자 곤두박질쳤고, 그저 그런 성적으로 본디 제 자리를 찾아갔다. 나에게 중고등학생 시절은 이렇게 지나갔다.

IMG_0889.JPG 좋단다

엄마는 아들이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 강하게 밀어 붙였다. 하지만 엄마 역시 어떻게 잘해야하고, 왜 해야만 하는지를 몰라서 어린 시절 나에게 설득시키지 못한 듯하다. 그에 반해 아빠는 정말 살기 바쁘고, 나의 의견을 존중해줬다. 항상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했고, 나쁜 길만 아니라면 응원해주거나 가만히 지켜봐줬다. 하지만 나는 여러 이유로 아빠를 존경하지 않았다.

IMG_0873.JPG 지금 입어도 괜찮겠는데 저 옷은

아들로서 부모님께 미안한 점도 정말 많다.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보단 미움이 더 컸었고,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들을 부모탓으로 돌린 적도 많다. 물론 지금은 그 시절의 부모님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부모님을 존경할 수 있게 되었다.

IMG_0881.JPG 무섭대요

어릴 때는 내가 힘든 이유를 모를 때가 많았고, 누구에게 말해야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다 큰 어른이 되고 나서야 부모님께 솔직히 말할 수 있었다. 나 정말 힘들었다고.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는 적잖이 충격을 받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보다.

IMG_0879.JPG 신났네

엄마의 편지는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나이가 들면 미안한 사람이 많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엄마의 사과와 오랜만에 보는 글씨체에 눈물이 났다. 차마 전화로 못하는 글씨들이 엄마의 감정을 모두 느끼게 해줬다. 유난히 힘들었던 한 주에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게 해주는 편지였다.

IMG_0877.JPG 사진 찍을 때 좋아하는 티는 죽어도 내기 싫은 사람

사연없는 가족은 없다. 그렇다고 말하고 다닐만한 사연은 또 못된다. 만약 내가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면 더 나은 부모가, 더 괜찮은 선배가 되겠다고 다짐할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최악의 경험도 결국은 나에게 좋은 경험으로 바뀐다. 최악을 겪지 않기 위해 피하거나 극복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IMG_0875.JPG 언럭키 설현

유복하진 않았더라도 큰 부족함을 못느끼고 자랐다는 사실과, 아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 부모님은 흔하지 않은 것을 이제야 알기에 감사한다. 아직은 표현하지 못하는 아들이지만 조만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으로 예상하기에, 이렇게나마 감사함을 적어본다. 정성스럽고 솔직한 편지를 받았으니 답장을 써야겠다. 나도 미안하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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