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재밌는 것 같아
얼마전 친구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퇴근 후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이 친구는 나와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같이 나온 동네 친구이며, 만날 때마다 축구 얘기를 하거나 축구 게임 얘기를 하는 흔한 동네 친구였다. 덕분에 서로의 집도 놀러 갔다 왔다하며 서로의 부모님이 이름을 대면 아는 친구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차도 얻어 탔었고, 인사도 자주 드린 터라 가야만 하는 자리였다.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거리라 생각할 시간도 많았다. 나도 몇 년 전 친할아버지, 그리고 작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한지 얼마 안되어 그 사실이 처음엔 와닿지 않았다. 내 할아버지, 그리고 친구들의 조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소식이 하나 둘 늘어가고, 또래의 결혼 소식과 함께 부모님들의 정년 퇴임, 그리고 내 부모님의 늙어가는 모습 등을 보며 흔한 사람 사는 이야기 속으로 빠진 것 같았다.
20살이 되면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20대 중후반엔 취업을 하고, 30대 초중반에 결혼을 하며, 아이를 갖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늙어가며 부모가 되는 뻔한 인생을 살기 싫었다. 그런데 난 누구보다 평범하고 뻔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으면서 싫기도, 싫으면서 좋기도 한 뻔한 소설의 주인공의 기분을 이젠 인정하려 한다.
나는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어떤게 뛰어나고 잘하니까 난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다. 그렇게 오만하게 살다가 몇 번의 좌절을 맛보니 정신을 차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을 특별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난 그 중에서 정신 못차린 거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불만스러웠던 일상이 좀 너그러워졌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 재능이 없는데 저 사람은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능력이 생겼다.
장례식에서 만난 동네 친구는 한참을 방황하다 이제 슬슬 자리를 잡고 하고 싶은 일을 찾은듯했다. 상주인 터라 바빠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게임 얘기만 하던 친구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고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기분이 좋으면 안되지만 달라진 친구의 모습에 괜히 뿌듯했다. 그리고 우린 평범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남들같은 삶을 살기 싫어 발버둥쳤는데도 뒤돌아보면 너무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흘러가는대로 두기로 했다. 어쩌면 하고 싶은대로 해도 크게 뒤틀어지지 않을거라는 묘한 보험이 생긴 기분이 들어서 내 행복의 범주 안의 취미들을 늘려가고 있다. 한참 기다려 들어간 맛집이 실망스러워도 다음에 우연한 맛집을 찾겠지하는 맹목적인 믿음이 생겼다. 죽으라는 법은 없고, 누구나 하는 경험이니까,
그러니 작은 일에 크게 낙심하지 말고 다음에 좋은 일이 있겠지 하며 넘기자. 생각보다 별거없는 인생이지만 특별하게 생각하면 더 재밌는 것도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