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할머니가 무릎을 다치셨다. 인공 관절 수술을 하셨고, 당분간 병원에 입원해 계셔야해서 병문안을 다녀왔다.
난 초등학교 생활을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할머니집에서 평일에 살고, 주말 하루 정도는 부모님과 보냈다(대부분의 시간은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성격이나 성향을 나름 잘 안다. 우리 할머니라면 지금 무릎이 다치고 수술을 했으니 원래 아프던 다른 곳들도 같이 아픈 기분일거다.
우리 할머니는 문학 소녀다.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쓰시는 것을 좋아한다. 어찌보면 내가 글을 꾸준히 쓰게된 이유에 유전적인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는 우울증을 가지고 계신다. 작은 사건에도 크고 깊게 생각하다 결국 본인 탓으로 돌리거나 항상 결말을 안좋은 쪽으로 내버리는 그런 사람이 우리 할머니다.
무릎 수술이 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이곳 저곳이 아프다고 하시며 관련없는 속도 안좋다고 하시며 온 몸이 아픈 사람처럼 아무도 말걸지 말라, 건들지 말라고 하신다. 그렇게 내 병문안은 간단한 인사와 함께 제대로 된 대화도 못하고 끝났다.
그런데 이렇게 할머니가 아파하시니 요양원에 보내야한다는 말을 자식들이 하기 시작했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할머니 집을 팔자니 어느 집에 잠깐 보내자니 그런 말들을 한다. 짐덩어리를 치우듯 말이다.
우리 엄마는 본인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를 챙겨야한다는 사명감에 살아 본 적 없는 할아버지 옆 동으로 이사를 가고 20년 가까이 할아버지를 모셨다. 나도 함께 이사오면서 적응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 그 동네에서 살았다. 하지만 난 할아버지를 모셨다기엔 한 것이 없다. 하지만 엄마는 정말 모셨다.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실때도, 마지막까지도.
그렇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는 개운해했다. 슬펐지만 그동안 가장 많이 곁에 머물렀고, 싫은 모습 좋은 모습 모두 보고 난 엄마는 자식으로의 도리를 다 했다며 씁쓸하지만 미소를 보여줬다.
그에 반해 친할머니네는 사정이 다르다. 자식들이 꽤 여유롭게 살고 근처에 살지만 분위기는 딴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고, 명절이나 가끔 찾아가고 안부 전화도 밀린 숙제처럼 하는 그런 불효스러운 손자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조금은 달라졌다.
나는 요양원에 보낸다는 의미를 안다. 그건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면서 쇄약해지길 기다리는 지겨운 과정이다. 몸도 정신도 점점 망가뜨리는 과정으로 보내는 그런 곳이다. 그렇게 되면 자식들도 준비하게 된다. 우리의 부모들은 과연 그 시기가 오면 똑같이 되는 것을 원할까? 분명 무섭고 싫을텐데 어쩔수없이 가는 것이 그게 맞는걸까? 나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쉽게 요양원에 보낸다는 말은 무책임해 보인다. 상상하기 싫지만 나의 부모도 그런 상황이 된다면 과연 내가 엄마처럼 헌신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전엔 불확실했다면 지금은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야만 한다. 난 무책임하고 도리없는 자식이 되고 싶지 않다.
이전에는 불확실했다. 지금도 모든 걸 다 알지는 못한다.
다만 분명해진 건, “누군가 대신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부모를 대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게 나중의 나를 조금 덜 부끄럽게 만들 것 같아서.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