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보는 자유로운 방법들

서울 시립 미술관 전시 연계 프로그램 <세마-라톤: 말하는 머리들>

by 방감자
<말하는 머리들>

5월부터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말하는 머리들>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인 [세마-라톤: 말하는 머리들]에 선정되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전시를 본 무작위의 인물들, 그리고 서울 시립 미술관의 큐레이터분과 함께 전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토론회이자 만담회같은 모임이다.


서울 시립 미술관

사실 신청을 할 때까지만 해도 잘 모르겠고 재밌어보여서 무작정 제출했다. 그리고 큐레이터분께 선정 메일을 받고 나서야 실감했고, 생각보다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6명 중 한 명이라고 하신데다가 이전 데이터가 하나 없었고 전시 주제도 꽤 어려워보였기 때문이다. 우선 얘기를 하려면 전시를 보러 가야했기에 주말을 활용해 서울 시립 미술관을 찾았다.


서울 시청과 덕수궁에 아주 가까운 시립미술관 근처는 차분한 분위기였고, 입구에 들어서부터 나는 대리석 냄새와 전시장에서 나는 듯한 소리들이 나를 반겨줬다.

3층 전시관

내가 중점적으로 이야기할 전시는 3층, <말하는 머리들>이었다. <말하는 머리들>은 '행동'이라는 주제로 말하기와 듣기, 행동, 신체 등을 통해 언어·비언어적 소통으로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탐구하는 작품을 모은 전시다. 계단을 올라서면 보이는 암막같은 공간에서 우울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들어가기 너무 싫었지만 내가 공부해야할 전시 중 하나여서 들어가야만했다. 나에게 전시 관람은 기분 좋게 나오고 싶고 감명깊게 여겨지는 놀이인데, 그 작품을 오래 보고 있으면 우울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적당히 보고 냉큼 나와 본 전시관으로 향했다.

노라 투라토(Nora Turato) - I hear you

본 전시관의 초입부터 쉽지 않았다. <말하는 머리들>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소리, 행동, 의사소통 등의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모여있었고, 이해를 하려고 애쓰는 나에겐 난해한 작품들도 몇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듯 전시를 관람하던 중간 지점에서 익숙한 매체인 사진을 활용한 작품들을 보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드디어 직관적이고 내가 얘기할만한 작품이구나 하며 사진을 보고 헤드셋이 놓인 빈백에 앉아 영상을 관람했다. 영상엔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일상 영상이 나오며 가끔 작가와 일반인들이 대화하는 소리도 들렸다. 20분 남짓한 영상을 모두 다 보고 이전에 어려워했던 전시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8명의 작가 중 내가 이야기 할 작가는 이 작품이다.'

하나씩 뽑으면서 읽는 재미

전시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 주제를 어느정도 아는 사람의 마음으로 재관람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까지 모두 읽었을 때 이 전시의 맛을 알아버렸다. 2층으로 내려가 이어지는 전시들을 보고 다음주에 내가 앉게될 전시장 한 가운데에 마이크가 놓인 테이블을 보며 이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하려 애를 쓰며 카페로 넘어가 글로 정리했다.

불 꺼진 전시장

<세마-라톤: 말하는 머리들> 18:30 - 20:30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수요일 오후, 반반차를 쓰고 시립미술관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근처 카페에서 기다렸고, 시간이 임박하자 큐레이터님께 연락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이야기에 참여하는 분들이 모두 자리에 앉고, 각자의 지원 동기와 간단한 소개를 시작했다. 건축을 전공하신 기획자 어머님, 서양화를 전공하신 작가님, 프로그램 n회차 참가자 선생님, 큐레이터님, 그리고 나까지 총 5명이 마이크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비가 좀 내렸다.

척봐도 내가 가장 어렸고, 배경 지식은 물론 전시에 관한 이해도 역시 내가 가장 떨어져보였다. 많게는 부모님, 적게는 선생님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고, 전공도 있으신 분들의 전시 관람 후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나도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했다. 앞서 말했던 우울한 소리들이 흘러나오는 암실의 후기가 나를 제외한 모든 분들이 좋았다고, 그것도 '너무' 좋았다고 하셔서 놀랐다. 이런게 보는 눈의 차이인가 싶기도 했다.


다 안봐도 돼, 그래도 괜찮아

이전 스터디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들

서양화를 전공하신 작가님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시장에 가면 모든 작품들을 보려고 애를 쓰고, 한 작품에 시간을 많이 투자를 안하게 된다고 하며 영국에서의 본인 경험을 말씀해주셨다. 6-7살 되는 어린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단체 관람을 하러 왔는데 단 한 작품을 보면서 2~3시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3층 서점

평범남, 일반인을 자칭하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고, 여태 나도 그래왔다. 모든 작품을 봐야만 하고, 그를 위해선 소홀히 하는 작품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굳이 왜 모든 작품을 다 봐야하나, 내 맘에 드는 작품 하나만 마음에 새겨도 좋은건데, '그래도 괜찮다'라는 말이 큰 위로가 됐다.

이전 스터디의 기록들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느정도 전시를 즐기는 법의 힌트를 찾은 듯하다. 기획자의 관점으로 전시를 봐도 좋고, 장애인의 시선으로 봐도 좋고, 아무 생각 없이 느껴지는 대로 생각하는 것도 다 좋았다. 예술을 어렵게만 볼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작가와 대화하듯 관람해보고 싶어졌다.

3층에서 본 2층

전시가 고상한 취미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작품도 기획자, 작가, 관람자마다 모두 다르게 해석되고, 그 모든 감상이 정답이 될 수 있다. 그 답들이 쌓여 나만의 취향이 된다.

파울린 올테텐(Paulien Oltheten)

작품을 꼭 다 안 봐도 괜찮다’는 말은 하나의 위로였고, 오늘의 이야기는 나에게 전시를 즐기는 법을 알려준 수업과 같았다. 선정해주신 서울 시립 미술관 큐레이터님, 그리고 이야기나눈 야미꼬님, 안작가님, 빠삐용님 감사합니다. 우연히 전시장에서 만나요.

1층 카페에도 그려져있는 단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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