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어무물
만물이 드러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다
도는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무언가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눈은 눈을 보지 못한다. 보는 자가 보려는 그것 속에 들어있으니 볼 수 가 없다. 또, 보는 자와 보려는 그것은 둘이 아니다.
사실 문제는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면서부터다. 그 때부턴 내 몸이 내가 되고, 내 생각이 내가 되며, 내 감정이 내가 된다. 몸, 생각, 감정과 동일시하는 것은 에고가 가장 좋아하는 수법이다.
에고는 우리가 몸을 자신이라고 믿으면 자신을 절대 버리지 않을 거라고 믿기에 끊임없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몸, 생각, 감정을 동일시하도록 부추긴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내 몸이 나이고, 내 생각이 나이고, 내 감정이 나라도 믿었던 시절엔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에 빠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평가하고 비교하고 판단하여 스스로를 괴로움의 늪에 빠뜨렸다.
마음에 일어난 생각 하나 때문에 괴로운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지만, 그 생각은 에고가 만든 환상일 뿐 실체가 없다. 이 생각에만 속지 않으면 우린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근원의 자리에 머무를 수 있다.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파도라는 걸 알아차리고, 깊은 바다의 고요에 닻을 내릴 수 있으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언제나 여여한 그곳에서 지고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우주만큼 한도 끝도 없는 '진짜 나'를 에고의 장난에 속아 '나'라는 좁디좁은 몸, 생각, 감정에 가두지 말고,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자리의 주인임을 기억하라.
진실로 텅 비어있지만, 묘하게 있는, 없다고도 하기에는 없는 것을 아는 그 무언가가 앎의 상태로 현현하다. 구하려 하지 않고 취하려 하지 않으면 우린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있는 그대로 지금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