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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동법

누군가의 피 묻은 빵을 먹고 있나

그 빵이 아무리 맛있어도 목구멍에 넘어가는가

by 이동민

카카오톡이 멈춘 그날, 누군가는 삶도 같이 멈췄다.


2022년 10월 15일. 40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카카오톡만 들여다보면서 언제 멈춘 일상이 되돌아오나 생각하던 날이다. 화재가 일어나기 반나절 전, 새벽 6시 20분 SPL 평택 공장에서 샌드위치 재료를 배합하는 기계에 상반신이 끼어 23세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는 소스를 섞는 기계(교반기)에 마요네즈와 고추냉이를 섞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했다. 그 기계는 가로, 세로, 높이가 약 1m가 되는 기계이다. 꽤 큰 사이즈이지만 높이는 허리춤에서 멈추는 기계다. 어쩌면 밤새워 일하는 고된 작업이 끝나가 잠시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 아니면 평소에 교반기 바깥으로 재료가 너무 많이 흘러나온다는 질책이 떠올라 너무 열심히 일하려 한 탓이었을까. 어쨌든 그는 우리가 '따로 섞이지 않아도 아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재료를 섞다가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재료가 섞이지 않았다고 회사에 컴플레인을 한 사람이 있었을까? 그 사람이 그의 죽음을 보았다면 뭐라 말했겠나.






멀리서, 그것도 아주 멀리서, 남의 일인 양


우리는 아주 멀리서 그것이 남의 일인 것처럼 대하고 있다. 그가 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일이 얼마나 힘들었기에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는 야간근무를 하지 말라고 했는지에 대한 미시적 질문부터 그가 왜 30만 원밖에 하지 않는 인터로크(자동방호장치)를 대신해 목숨을 잃었는지, 왜 김용균 이후에도 제2, 제3의 김용균이 계속 나오는지에 대한 거시적 질문까지, 우리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사회에게 할 질문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우리는 한 발짝 더 멀리서 더 남의 일인 것처럼 그 일을 대하고 있다. SPL 사고 공장은 사고가 난 그 기계에만 흰 천을 둘러놓고 바로 다음날 정상 가동되었다. 작업자들은 동료의 시신을 수습한 그곳에서 다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피 흘린 그곳에서, 그들 스스로도 피와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빵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면 공장을 셧다운 하라는 말이냐.


질문이 틀렸다. 공장을 셧다운 하라는 말이 아니라 최소한의 추모와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충분한 휴식을 주고 인터로크를 설치해야 한다. 안전기준을 다시 점검하고 동료의 장례식장에 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공장이 셧다운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공장을 셧다운 하는 것부터 눈에 들어오는 자는 감정의 어딘가가 많이 망가진 인간이다. 기계를 멈추는 것이 제1명제가 된다면 며칠 멈춰야 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나머지 삶은 거기에 맞춰서 조정된다. 기계에 사람이 맞추는 것이다. 기계에 의한 디스토피아는 이미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다.






전조는 있었다.


분명한 징후가 있었다. 사고 불과 8일 전에 일용직 노동자의 손이 기계에 끼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 노동자는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고용되었다. 인력사무소는 밀린 물량을 말 그대로 쳐내러 일용직 노동자를 현장에 보냈고, 현장 담당자는 '기계를 멈추고 청소를 하라'라는 간단한 작업지시도 하지 않은 채, 현장이 처음인 사람에게 기계 청소를 시켰다. 그리고 그는 그 기계에 손이 끼었다. 병원에 가겠다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회사의 대응은 우리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기간제네? 기간제는 자기네가 알아서 해. 아웃소싱 업체가 어디예요?' 그리고 회사는 병원은 알아서 가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당신 지금 누군가의 피가 묻은 빵을 먹고 있나?


큰 회사는 매뉴얼이 존재한다.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매뉴얼에 따라 부품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매뉴얼도 최소한의 상식을 따라야 할 것이 아닌가. SPC는 사망한 그의 장례식장에 빵 두 박스를 보냈다. 그 길고 긴 결재라인에 이것이 정상이 아니라고,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리라고 말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침울한 분위기에서 말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은 간다. 하지만 누가 딸의 피가 묻은 빵을 먹고 싶겠나. 그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나.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누군가의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그 빵을 단지 '싸다'라는 이유로, '편하다'라는 이유로, '맛있다'라는 이유로 먹을 수 있겠나.




* 주변에 SPC 및 그 계열사에서 일하다가 다친 분이 있다면 꼭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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