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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동법

정의구현. 언제 들어도 짜릿한 말.

당신의 흑역사, 박제해 드립니다.

by 이동민
정의구현


언제 들어도 짜릿한 말이다. 내가 항상 정의의 편에 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흔들리는 줏대에도 정의라고 표현할만한 일은 있다. 이번 사건이 그랬다. 아무리 봐도 상대방은 정의롭지 못한 측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어린이집 교사들의 월급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모두 책임진다. 정확한 비율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사는 경상북도는 50%를 국가에서 25%를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나머지 25%를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한다. 즉 어린이집 원장이 교사에게 주는 월급은 0원이다. 그런데 원장들 중에서는 '내가 주지도 않는 월급'을 페이백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의뢰인도 매월 10만 원씩 원장에게 상납했다. 계약이 유지되려면, 편하게 일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아무리 달라고 해서 줬다고 한들 그게 옳은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선생님께 제의했다. '그건 옳지 못한 일이니 소송을 하자'라고. 의뢰인은 이미 지쳐있었다. 경찰서에도 가보고 노동청에도 가봤지만 두 곳 모두 돌려받을 수 없다는 대답을 했기 때문이었다. 변호사 비용도 문제이지 않나. 고작 120만 원 받자고 몇 백만 원을 수임료로 쓸 바보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방면에서는 더 바보 같은 사람이다. 법원에 내야 하는 인지대, 송달료까지 내가 부담하겠으니 소송을 하자고 말했다.




경찰서에서도, 노동청에서도 이미 두 번의 면벌부(요즘은 교과서에 면죄부라는 단어를 안 쓴다는 걸 알고 계신가)를 받은 원장은 굉장히 떳떳했다. 제1심 판결까지 원장의 손을 들어주니 패소할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오히려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도 말했다. '내가 너무 노동자 친화적인 마인드로 경도되어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과 자책을 하면서 항소심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어제 기다리던 항소심의 결과가 나왔다.


정의구현.jpg 응~ 기각해~ 항소하면 그만이야~~


결과는 10만 원씩 12개월이나 페이백을 한 금액 전부 승소였다. 과연 프로보노는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억울한 일을 겪었다면 주변을 둘러보시라. 정의감에 불타는 변호사 한둘쯤은 있을 것이다. 주변에 찾아도 없으면 나에게 오셔도 된다. 대신 좀 까칠한 건 아실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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