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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동법

사장이 10만 원을 가져갑니다.

자기가 주는 월급도 아닌데 말이죠.

by 이동민
원장님이 제 월급에서 10만 원씩 빼서 돌려달래요.


사업자가 보조금을 부정 수급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코로나 지원금으로도 근근이 버티면서 정직하게 사업을 운영하는 사장들도 많은 반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눈먼 돈을 부정으로 수급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직원들의 보조금까지 부정 수급하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청년 내일 채움 공제 사업을 악용하는 사업장을 들 수 있다. 청년 내일 채움 공제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연봉에 포함시키는 기업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심지어는 그중 일부를 돌려달라고까지 하는 사업자도 종종 있다.




우리 어린이집에서 일하시려면 월 10만 원은 돌려주셔야 해요. 다 그렇게 해요.


그런데 나에게 찾아온 의뢰인은 그런 수준을 많이 넘어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는 어린이집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데, 어린이집 교사의 월급은 정부 부담, 광역 지자체 부담, 기초 지자체 부담금 만으로 월급이 구성되어 있다. 즉 어린이집 원장이 교사의 월급으로 부담하는 금액은 0원이다. 어린이집 원장은 그것만이 아니라 부식비 등 여러 명목의 지원금을 받는데, 그런 지원금을 유용하는 것을 넘어 의뢰인이 다니던 어린이집의 원장은 선생님들의 월급에 손을 대는 짓까지 했다. '월급을 받으면 원장의 계좌로 월 10만 원씩 입금하는 것' 그것이 애초에 채용의 조건이었다.




이제 와서 이러시면 어떡해요. 약속이랑 다르잖아요.


그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채용을 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의뢰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가 아니라도 그 계약서에 서명만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이름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5명만 되어도 한 달에 50만 원, 1년이면 600만 원이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돈을 벌려면 판사와 의뢰인에게 시달리고 머리를 쥐어짜가면서 서류를 적고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돈을 벌다니. 너무 배가 아팠다.




위임장에 서명만 해주고 가세요.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이 받아야 할 월급을 착복하는 사람이 떵떵거리고 잘 사는 모습이 너무 배가 아프지 않나. 나는 의뢰인에게 소송 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하였다. 여기 소송 위임장에 서명만 해놓고 가시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하겠노라고 하였다. 항소심이 진행 중인 그 재판에서 원장은 10만 원 페이백(pay back)한 부분이 식비였다고 했다가, 처음에 약정한 금액이라고도 했다가 횡설수설하는 중이다. 형사 사건에서 어떤 변명으로 잘 빠져나갔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진행 중인 민사 사건에서는 그렇지 않다. 돈을 못 벌어도 그런 배아픔은 못 참는 미친놈이 여기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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