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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비와 상담료의 '언'밸런스 게임

그렇다면 나도 그대 가게에서 음식값을 내지 않아도 괜찮은가?

by 이동민

한 가지 일을 10년 정도 하면 일정한 경지에 오르게 된다. 변호사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10년 정도 일을 하면 반쯤 관상가가 되는데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까지는 알지 못해도 숨소리만 들어도 이 사람과는 상담 중에 언쟁을 좀 높일 수 있겠구나 정도의 감은 온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나를 도와주려는 변호사와 논쟁을 할 일이 뭐가 있겠나 싶지만, 의외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변호사에게 토로하는 비정상인은 많은 편이다. 비정상인이란 표현이 심한가? 아니. 절대 심하지 않다. 음식점에서 칼 탓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내가 만든 법이 아닌데도 내가 비난을 받을 때도 있고, 내가 부인을 가출시킨 것도 아닌데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술을 마시고 오는 사람도 있고, 전문가를 상대로 법률 강의를 하는 사람도 있다.




외표만 보아도 진상인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은 미리부터 받지 않거나 상담을 일찍 종료하면 된다. 화가 날 순 있지만 화를 이성적으로 제어하고 대화를 하려는 사람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대화에서 그 화를 배출하는 사람은 다르다. 후자는 돌려보내면 된다. 예를 들어 애초에 술을 마시고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도 다음날이면 잠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음식값을 내지 않을 것이 확실한 손님을 애초에 받을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다.




겉보기에 진상인 사람이 '그나마' 양반이라는 뜻은 사실 더 음흉한 부류가 있다는 뜻이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의 특징은 우선 말이 굉장히 번지르르하다는 것이다. 상담 중에 본인의 자산에 대해 자랑을 하기도 하고, 이 사건만 잘 해결되면 나한테 별도 달도 따 줄 수 있을 것처럼 말을 한다. 내가 자기 애인도 아닌데 저런 말을 왜 하나 싶기도 하지만 먹고살아야 되니까 꾹 참고 들어준다. 그리고 본인의 할 말이 끝나면 부리나케 짐을 싸서 떠날 준비를 한다. 그때는 진상 판별기가 출동할 차례다. 진상계의 리트머스 종이. 상담료다.




삐빅: 진상입니다.


어김없다. 상담 중에 자신의 부에 대해 과시하는 사람일수록 몇 만 원도 안 되는 상담료는 피같이 여긴다. 음식점 몇 개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본인이 세를 주는 건물이 몇 채는 된다면서 자랑을 할 땐 언제고 상담료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싸늘해진다.


'여기서 해결된 게 뭐가 있다고 돈을 달라고 하십니까?'


'아, 그런가요? 그럼 제가 사장님 가게에서 밥 먹고 그냥 나가도 사장님을 보내주시겠네요?'


'그게 이 일이랑 똑같습니까? 밥을 먹었는데?'


그런가? 나는 어찌 되었든 배고픔이 해결됐는데, 그대는 법적인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니 돈을 줄 수 없다는 말이 설득력 있는 건가?




올해는 약간 주춤하지만 작년까진 밸런스 게임이 유행이었다. 선택하기 어려운 두 가지를 제시한 후에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게임이다. 극악의 밸런스 게임으로 유명한 선택지 둘 정도를 보자.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월 200만 원 받는 백수 VS 월 500만 원 버는 직장인'
'최순실 VS 근손실'


훌륭하다. 어떤 것도 쉽게 고르기 힘들다. 그런데 밸런스 게임이 유행하다 보니 기출 변형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밸런스 게임의 기출 변형은 사실 한쪽의 밸런스가 심하게 무너진 '언'밸런스 게임이다.


'입대 VS 1억 원 받기'


지식을 팔면서 사는 우리들은 마냥 웃을 수는 없는 이야기이다. 우리도 같은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점에서 밥값 안 내기 VS 변호사 사무실에서 상담료 안 내기'
'점집에서 복채 안 내기 VS 변호사 사무실에서 상담료 안 내기'


음식점 하나를 내기 위해 수년간 하루 최소 13시간씩 음식을 만들어서 창업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자격증을 하나 따기 위해 수년간 하루 최소 13시간씩 공부를 했다. 그렇게 준비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그 메뉴를 10년째 요리해서 팔면 일정한 경지에 오른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나는 까칠한 사람이니까 대한민국에 있는 많은 변호사들을 대신해서 소신 발언을 하겠다. 그리고 상담료와 음식값의 밸런스가 맞춰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그대에게 이런 취급받으려고 공부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서비스 이용료는 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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