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으신 분들은 그걸 모르신다니까요.
다리 따위는 장식입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모르신다니까요.
기동전사 건담에서 나온 이 유행어의 원문은 위와 같다(미리 말하지만 우리 동년배는 건담을 잘 모른다. 마찬가지로 나도 건담을 잘 모른다. 진짜다). 인간 신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다리를 장식 따위라고 치부하는 것이 이 밈(meme)의 첫 번째 생명력이고, 그렇게 간단한 사실을 높으신 분들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이 밈의 두 번째 생명력이다.
언뜻 생각했을 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장식이라고 치부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높으신' 분들은 모른다고 하는 것은 상당한 충격이다. 밈의 출처가 마이너한 곳이지만 다른 곳까지 널리 퍼진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이 유행어는 우리 사회에도 날카로운 풍자(사르카즘)를 제공한다.
브런치에는 악플이 잘 달리지 않는 편이다. 여기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끼리 '작가님'이라고 부르면서 존중하는 편이고, 본인의 글과 댓글이 다른 사람에게 바로 평가되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에 대해 글을 적는 사람의 숫자도 상대적으로 적다. 브런치가 다음카카오의 플랫폼이기 때문에 악플이 적기도 하다. 남에게 악플을 달 시간에 내 글을 한 번 더 읽고 고치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다. 브런치의 작가 심사 기준이 나름 까다로운 것도 악플을 줄이는데 큰 몫을 한다. '검증되지 않은 사람'은 글을 쓸 수도 없으니 물리적으로 저질스러운 글은 존재할 수 없고, 상대방이 '검증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판도 굳이 하지 않는 분위기다.
악플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쓴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악플을 두 개나 받았다. 조회수와 라이킷이 엄청나게 많은 글에도 악플이 달리지 않는데 조회수도 라이킷도 얼마 되지 않는 글에 굳이 악플을 달아 주시니 황송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무플보단 악플이지 않은가. 하나는 내가 쓴 방역 정책에 대한 글에 달린 악플이었다. 반말로 시작해서 '백신 접종을 강요하는 집단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다'라는 취지의 댓글이었다. 그 악플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내가 뭔가 답글을 달기도 전에 없어졌다. 본인이 삭제한 마당에 굳이 내가 그것을 박제할 이유는 없다. 그 사람도 나름의 삭제 이유는 있겠지. 그리고 그 사건은 '내가 어디서든 할 말을 하는 스타일이구나'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줬다. 나는 어딜 가나 조용히 있는 캐릭터가 안 되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악플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악플을 좋아한다기보다는 토론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종류의 토론에서 승자는 없다. 민감한 사안에 확신을 가지고 뛰어드는 사람은 설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토론에서도 내가 설득된 적도 없고 반대로 남을 설득시킨 경우도 없다. 내가 토론을 하는 목적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근거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내 주장을 펴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토론을 좋아한다고 해서 무례한 태도까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매너 없는 사람이 싫다. 아무리 그 사람의 주장이 타당해도 예의 없는 표현이 들어갔다면 그 근거까지 자세히 보고 싶지 않아 진다. 플랫폼마다 '저질스러움의 역치'가 다른데, 이는 그 플랫폼 사용자의 도덕성을 알 수 있는 지표다. 유난히 저질스러운 댓글 문화가 있는 곳에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도덕성이 낮은 사람들은 예의를 갖춘 사람에게 '선비질'을 한다고 조롱하고, 바른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조롱을 듣지 않는 다른 곳으로 간다. 그리고 '악화(惡貨)'가 통용되는 플랫폼에서는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매너 따위는 장식입니다.
내용만 좋으면 되는 걸 다른 플랫폼 이용자들은 모르신다니까요.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다 윤리적으로 바른 가치관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양식(良識)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받을 수 없다. 일류 요리사의 음식이 좋은 그릇에 담기든 약간 흠집이 있는 그릇에 담기든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류 요리사라면 본인이 만든 음식을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손님에게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매너는 장식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그걸 '모르는 높으신 분'들로 남아있어도 괜찮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