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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은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달라요.

by 이동민

법조인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법조인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 예전에는 거의 없었던 법정물 드라마도 많이 만들어진 걸 보면 10년 전보다 법조인이 훨씬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의 법정과 드라마 속에서의 법정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겠지만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을 '미안하게도' 소상히 밝혀보고자 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으로 단연 1위다. 10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말을 시작하는 변호사를 딱 한 번 봤는데, 갓 변호사가 된 친구였던 것 같았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단 한 마디로 법정에 있는 수많은 변호사들의 시선을 강탈한 그 친구는 지금은 그런 말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재판장을 부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말 자체가 번역 오류로 보인다는 점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법부의 권위를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일어서서)


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들은 검사가 변론을 할 때 독수리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자신의 차례에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일어서서' 변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에서 변호사는 거의 일어서지 않는다. 형사 재판에서 검사의 논고가 끝나면 변호인의 최후진술이 있는데 이때 일어서서 하는 것이 관례이긴 하나, 드라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은 구부정한 자세로 미리 정리해 온 의견서를 읽는 모습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그렇게 초라한 변호사의 모습을 그릴 수 없지 않나.




이의 있습니다. 검사 측은 지금 유도 신문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지만 현실에서 보기 어렵다. 우선 '이의 있소'가 현실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유도 신문은 형사소송규칙상 금지되어 있지만 실무에서는 제한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규칙에 유도 신문의 예외사항이 많이 규정되어 있는 영향도 크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검사나 변호인이 어떤 질문이 유도신문 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반대신문에서는 유도신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검사와 변호사의 치열할 공방은 반대신문에서 이루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사실을 증언해 줄 증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증인은 그날 데리고 와서는 안 된다. 증인을 신문하기 위해서는 미리 증인 신청을 해야 하고, 증인 신청이 채택되면 다음 기일(보통 1개월 후)에 증인 신문이 이루어진다. 그날 동석한 증인을 증인 신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없다'라고 하는 이유는 아주 예외적으로 쌍방이 증인신문에 이의가 없으면 증인신문을 할 수도 있는데 어떤 증언을 할지 모르는 증인에 대해 이의를 신청하지 않는 법조인을 본 적은 없다. 증인신문은 아주 신사적으로 행해지는데, 신청하는 쪽이 어떤 사실을 입증할 것인지, 어떤 내용을 물어볼 것인지를 미리 서면으로 제출한다. 그리고 상대방도 반대신문사항을 서면으로 기재하여 제출한다. 하지만 너무 신사적이면 극적인 맛이 떨어지니 그런 반전 정도는 이해한다.





[땅땅땅]


우리나라 법원은 1966년부터 이미 의사봉(법정에서는 특히 법봉이라고 한다)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용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비치를 하지도 않는다. 망치가 주는 충격음, 상징성 때문일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수많은 영화 제작 절차에서 자문 변호사들이 제발 빼 달라고 요청하지만 제작자가 일부러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집어넣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전 국민에게 생중계된 박근혜 탄핵 심판을 떠올려 보면 의사봉이 없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건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니 이쯤에서 넘어가도록 하자.




재판이 벌써 끝났나요?


네. 재판은 이미 애초에 끝났습니다. 의뢰인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재판 한 번에 수십 분, 수 시간까지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 재판은 10초 컷이다. 그날 법정에서 다툴 사항이 조금 많다 싶으면 5분에서 10분 정도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음 재판 눈치 보느라 그나마도 마음껏 구두로 변론하지 못한다. 실제로 10초 컷으로 끝나는 재판도 많다. 그렇지만 재판 자체가 10초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선 1회 기일이 10초 안에 끝날 수 있다는 뜻이고, 기일이 적게는 3~4회, 많게는 수십 회까지 잡히니 우리가 놀고먹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10초 안에 재판을 끝내려면 서면으로 미리 충분하게 자신의 주장을 펴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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