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해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그거 악플인 건 아시죠?
장사는 좀 되나?
나는 강원도에서 태어났지만 경상도에서 자랐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지금은 경상북도 영천이라는 곳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퇴직을 하셨고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던 이곳에 뿌리를 내려 사업을 하고 있다. 태생이 경상도가 아니라서 그런지 경상도 말투가 나에게 친근함을 주면서도 거부감을 주는데 그중 하나가 저 말이다. '장사는 좀 되나?' 최소한의 유대감이 형성된 상태에서는 귀에 거슬리는 말이 아니다. '밥 뭇나'라는 말같이 친근감을 표시하는 말이다. '밥 먹었냐'는 말이 정보획득을 위한 질문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친근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린다. 더 나쁘게 들린다는 말이다.
손님은 좀 있습니까?
10년 전, 무변촌에 처음 개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시법원 근처에는 법무사 사무실밖에 없었는데 법무사들, 법무사 사무실 사무장들까지 날 보면 빙긋이 웃으면서 건네는 말이 저 말이었다. '손님은 좀 있습니까?' 분명 '장사는 좀 되나?'보다 훨씬 공손한 말투다. 하지만 공손한 말투 뒤에는 비수보다 날카로운 비웃음이 숨어 있었다. 그 사람이 날 언제 봤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속으로 궁금할 때가 많았다. '내 사무실에 손님이 있는 게 왜 궁금하지?' 그 사람들은 내가 손님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질문을 한 것이 아니다. '네, 손님 많습니다.', '아니오, 손님 없습니다.' 이런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젊은 사람이니까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옆에 장사가 아주 잘 되는 맛집 사장이 이제 막 생긴 음식점 주인에게 웃으면서 '손님 좀 있어요?'라고 묻는 것이다. 이걸 불편해하는 내가 예민한 사람이고, 속이 좁은 사람인가? 내가 그 사람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어도 그런 질문은 불편하다.
큰돈 버시긴 힘드실 것 같네요.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받았던 두 번째 악플이다. 물론 이 댓글을 단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언어는 맥락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 독자가 다른 내 글도 읽고 나의 글에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면서 그런 댓글을 남겼다면 내가 악플이라고 생각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그 댓글을 남긴 사람은 다른 어떤 글에도 라이킷을 누르지 않고 적지 않은 내 글 중에 저 댓글 하나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큰돈 버시긴 힘드실 것 같네요.' 이게 불편하지 않다면, 이걸 불편해하는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영향에 얼마나 둔감했는지 생각해보자.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내가 큰돈을 벌지 못 벌지 왜 걱정을 하는 것이며, 왜 내 사무실 운영 원칙을 '돈'으로 평가하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생각해보면 큰돈을 벌지 못한 것은 맞다.
그러니 뼈를 때린 팩트이지 '악플'은 아닐 수도 있다. 내 10년을 돌아보면 손해를 보면서 사건을 진행한 적도 많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등가로 교환되는 법이다. 내가 그 사건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면 이야기할 거리도 없고, 그 사건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없다. 손해를 본 사건이니까 브런치에 넋두리를 남길 수도 있는 것이고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지'하는 교훈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글감을 주신 독자님께 감사한다. 지금부터는 내가 손해를 봤던 사건을 좀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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