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번 통상임금 소송을 승소로 이끈 이동민 변호사입니다. 조합원 여러분들의 진정한 궁금증에 대해서 항상 대신 답변을 드리다가 이제 제 목소리로 글을 한 번만 써보려고 합니다. 저의 목소리가 조합원 여러분들의 선택과 권익 신장에 도움이 되리라 믿고, 짧지 않은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1) 기존 대법원의 입장을 바꿀 필요가 있을 때, 2)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일 때 대법관 전원이 모여 판결을 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3년의 전원합의체 판결, 그리고 세아베스틸의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서, 그리고 기존 대법원의 입장을 바꿀 필요가 있어서 소집되었습니다.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여러 명목의 임금 중에서 그것이 "통상 임금"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1) 정기성, 2) 일률성, 3) 고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데 1) 정기성과 2) 일률성은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는 반면, 3) 고정성은 근로기준법 시행령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 조건이라서 그 자체로 학계의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위 판결에서도 대법원은 통상임금 산입 여부에 대하여 부정을 한 것이 아니라 인정을 하였습니다. 해당 사건에서는 일할 지급 규정이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매월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산입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대기업을 비롯한 여러 회사들은 통상임금을 줄이기 위해 여러 로펌들의 자문을 얻은 결과 '반대로 재직자 조건을 부여하면' 통상임금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도 '재직자 조건이 없어야만 통상임금에 산입 된다'라는 입장이 아니라 '일할지급 조건이 있는데도 통상임금에 산입 하지 않는 것은 안된다'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여러 기업은 앞다투어 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추가하게 되고, 대법원의 의도와는 달리 상여금이 부당하게 통상임금에서 제외되어 실질적으로 임금이 줄어드는 부조리가 10년 간 이어져 왔습니다.
이번 세아베스틸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왜냐하면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면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전원합의체에서 평의를 하기로 한 것 자체가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고 평합니다. 소송에 대해서 익숙하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대법원에 올라가는 절대다수의 사건은 '심리불속행'이라고 하여 심리 자체를 열지 않고, 심리가 열리는 사건이라도 대부분 부(部)에서 심의되기 때문입니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그 자체로 사회적 파장이 엄청나게 큰 사건이기 때문에 이것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는 것 자체가 이슈입니다.
세아베스틸 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근로기준법이나 그 시행령에도 없는 고정성 요건의 부여로 인해 너무나 큰 사회적 피해가 발생한 것을 시정하려는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이것은 현재 행정부가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대법관의 임기는 6년으로 대통령보다 길고 그 직이 헌법으로 보장됩니다. 미국의 판례를 분석한 논문을 보아도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연방헌법재판소의 성향은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사법기관이 행정부의 성향을 따라가는 일이 드물게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당한 사법거래(위안부 재판 등)이며, 우리 사회는 그 정도의 불법이나 부당함을 인내하지 않습니다.
조합의 수뇌부가 조합원들에게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저는 외부자이기 때문에 침묵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조합의 태도는 아무리 외부인이라도 묵과하기 힘듭니다.
양수석과 그 법률대리인인 저의 판결이 나오기 일주일 전에 기습적으로 단체협상 체결을 시도한 점, 시효가 지나지 않은 임금분에 대해 전부 승소가 나오고 나니 1) 209시간의 산입, 2)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부재 등 갖은 이유를 들어 단체 소송을 저지하려는 점 등을 보면 과연 조합원 전체를 위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그러면 저야말로 조합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저희 판결이 1심 패소로 결론 나왔다면 '조건을 더 낮춰서, 회사에 납작 엎드려서' 조합원의 이익을 해하면서까지 단체협상을 강행할 겁니까? '그것 보아라! 양수석 소송도 패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노동자의 조건은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태도로 협상에 임하셨을 겁니까?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인지, 조합원을 위한 것인지, 아니라면 조합 수뇌부의 말대로 무슨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것인지, 양수석이 어떤 이유로 이 소송을 제기하였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2년 간 느낀 양수석의 태도는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조합원분들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양수석의 진심이 본인 개인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왕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면 '고맙다,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 '당신 덕분에 협상이 더 유리해지게 되었다. 조합원을 대표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말은 할 수 없는 것입니까?
외부인인 주제에 말이 길어졌습니다. 다만 제가 조합원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양수석처럼 나서는 사람이 없다면 사회는 바뀌지 않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스스로 지위 향상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면 사회는 바뀌기 더 어려워집니다.
저는 힘닿는 데까지 여러분들을 위해 소송을 이끌어가겠습니다. 이것이 집단 소송으로 이어져 '회사와 더 큰 협상력을 가졌기 때문에 단협을 통해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저는 만족합니다. 처음 이 일을 맡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소송이 끝날 때까지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