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노동법

1일 1 노동법 - 6

임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인가? 노동력에 대한 대가인가?

by 이동민

임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일까? 노동력에 대한 대가일까? 아니면 이런 질문 자체가 쓸데없이 현학적인 것일까? 말장난 같기도 한 질문이지만 우리의 생각보다 더 심오한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칼 마르크스는『자본론』에서 노동labor/arbeit과 노동력labor power/arbeitskraft(또는 노동능력)을 구분하였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이면서 육체적 내지는 정신적인 능력이다.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노동력이 현실로 체화되는 것이 노동이다. 그렇다면 임금은 '우리가 노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라는 지위를 취득해서' 받는 돈일까? 아니면 '우리가 현실적으로 노동을 제공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로' 받는 돈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노동력을 처분할 권한을 사용자에게 양도했기 때문'에 받는 돈일까?




한 때 우리 대법원은 '근로관계*는 단순한 채권과 채무가 발생하는 관계가 아니라 신분적 관계도 형성한다(만든다)'라는 사실을 전제로 임금도 '상대방이 이행하는 채무(노동)에 따라 지급하는 부분과 신분적 관계(노동자이기 때문)에 따라 지급하는 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고 판단했다. 노동계약을 체결하면 신분적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에는 학계에 큰 이견이 없다. 다만 그 신분적 관계는 비대칭적인 사용종속 관계를 대등하게 하고자 함이지 반대로 노동자를 불리하게 하고자 형성된 이론은 아니었다. 하지만 임금 중 일정한 부분이 실제로 제공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고 한다면 같은 돈을 받더라도 '노동의 대가'로서의 임금은 줄어들게 되고, 추가적인 노동을 할 때 기준이 되는 임금이 낮게 책정된다.


예를 들어 100시간을 일하고 똑같이 100만 원을 받는 A, B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A는 100시간을 일한 대가로 100만 원을 받고, B는 노동자의 지위에 기하여 50만 원을 노동의 대가로 50만 원을 받는다. 그렇다면 똑같이 101시간을 일해도 A는 100만 원 / 100시간 * 1.5(연장근로 가산)로 계산한 15,000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지만 B는 50만 원 / 100시간 * 1.5(연장근로 가산)로 계산한 7,500원을 추가로 받는다.


따라서 우리 대법원은 입장을 변경하여 '현행 실정법 하에서는 모든 임금은 근로의 대가로서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를 받으며 근로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보수를 의미하므로 현실의 근로 제공을 전제로 하지 않고 단순히 근로자로서의 지위에 기하여 발생한다는 이른바 생활보장적 임금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판단하였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이전에 왜 그런 판결이 있었는지가 의아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한 논리가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너무 지겹지만 계명대학교에 사례를 다시 보아야겠다. COVID-19이 대구를 중심으로 확산되던 2020년 초, COVID 치료를 전담하던 동산 병원(학교법인 계명대학교 산하 병원)은 근무 중인 병동 간호사들에게 COVID 전담 직무를 맡게 하였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겠노라고 약속을 해놓고도 6개월이 넘도록 추가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한술 더 떠서 반기에 한 번 지급한 수당에 대해 수당지급일까지 일하지 않은 인력에게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통보하면서, 법정에 나와서는 '은혜적' 임금이기 때문에 퇴직자에 대해서는 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제공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달라는 소송에서 사용자가 '은혜로이 너를 불쌍히 여겨' 지급한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아직 의문이다. 의뢰인이 소송을 포기해서 합당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그 부분은 의문이 남을 것 같다.




* 근로(勤勞)는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으로 말 자체에 부지런하지 않은 일은 적용에서 배제할 가능성을 열어둔 친(親) 사용자 용어이다. 따라서 나는 최대한 근로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일을 뜻하는 노동을 주로 사용한다. 다만 판례의 용어나 법령은 바꿀 경우 오히려 혼선의 여지가 있어 그대로 사용할 뿐이다. 해외 어떤 법을 보아도 근로에 해당하는 말을 찾기 어렵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일 1 노동법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