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내가 멈출 순 없잖아.

by 이동민

집단 소송을 여럿 진행하다 보니 정신이 없습니다. 집단 소송은 그 특성상 변호사와의 소통이 어렵습니다. 보통은 소송의 대표자를 두고 대표자가 변호사와 연락을 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만약 그렇지 못한 사건이라면 수 백 명 의뢰인의 궁금증을 한 명의 변호사가 다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니 일처리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럴 땐 상대방이 던지는 것보다 더 날카로운 것이 등에 박히는 느낌도 듭니다.


민사 소송은 보통 1년을 보냅니다. 쟁점이 많고 증거 관계도 복잡하다면 2년, 3년을 넘기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의뢰인의 입장에서 1년은 충분히 긴 기간임을 알고 있습니다. 1년 항소심까지 2년 그렇게 진행하다 보면 의뢰인들의 불만은 쌓이고 그 불만은 보통 변호사에게 돌아옵니다. 그리고 공익 소송의 십중팔구는 좋은 소리도 듣지 못하고 소송을 중간에 그만둡니다. 몇 백만 원 지불하면서 변호사를 선임했다면 그렇게 쉽게 소송을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공익 소송은 당사자에게 어떤 점으로 보아도 사익 소송입니다. 아무리 정의의 사도인 척을 해도 당사자는 이해관계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소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익 소송은 변호사를 중심으로 제삼자가 판단해 주는 것입니다. 정의감을 이용해서 공익 소송이라는 허울을 씌워 변호사에게 귀찮은 일을 던져 놓고 결과가 안 좋을 것 같으면 냉장고 안에서 오랫동안 꺼내지 않은 음식을 버리듯 소송을 포기합니다.


신분 상의 불이익 때문에, 승소를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승소해도 그 이익이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소송을 포기하는 의뢰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대가 당신에게 소송을 하지 말라고 협박을 하거나 압박을 준다면 그 상대를 미워해야지 않겠습니까. 그 분노의 화살이 저에게 돌아오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그렇게 이해하기가 힘든 마음이 쌓이면 나도 그대들의 소송을 진행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공익 소송 따위 거들떠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자주 생깁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마음은 다시 사라집니다. 윤석열은 100년 전 우리나라를 짓밟은 나라에 대해서는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국민이고 누군가의 아빠이자 엄마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폭력배라는 단어까지 붙여가면서 감옥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노동자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 노동자들도 진정성을 보일 것'이라고 말한 적 없는 자가 침략국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제가 나 하나 힘들다는 이유로 공동체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덧) 사측 변호사와 협작 해서 소송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서 억울한 마음에 쓴 글은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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