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이여, 적은 없다네.
"Freunde, es gibt keine Freunde!" so rief der sterbende Weise,
"Feinde, es gibt keinen Feind!" ruf`ich, der lebende Tor.
- Fredgrich Nietzche,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다네." 죽어가는 현자가 말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바보가 말한다. "적들이여, 적은 없다네."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내가 어떤 사람을 적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 사람의 나머지 모든 관계는 부정된다. 반대로 내 옆의 사람을 친구라고 규정하면 경쟁자, 적으로서의 관계는 희미해진다. '친구에게 느껴서는 안 될 감정'을 느끼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은 그 감정이 관계를 하나로 규정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아야 한다. 그 사실을 모르면 하나의 규정 아래 부정되는 모든 관계가 자신을 난도질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친구를 질투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질투가 건강한 감정은 아니니 하지 않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나는 대통령이 당선되는 그날부터 (어쩌면 한참 전부터) 그를 나에 대한 비우호적인 관계의 사람으로 규정하고 나머지 모든 것을 부정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같은 당에서 그의 정책에 동조하며, 선봉장 역할을 하는 대구시장도 반(反) 관계로 규정했다. 실제로 대구시장은 대통령이 하고 싶은 모든 정책을 앞장서서 실행했다. 마트 의무휴업일도 이해당사자의 동의 없이 바꿨고, 대중교통 무임승차 연령도 상향했다. 전부 이 정권이 해내고 싶었던 일이다.
살아있는 바보의 말이 옳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로 알려진 명언(정확히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을 적절하게 비틀어 위와 같은 명언을 탄생시켰다. 서로 합이 잘 맞는 대통령과 광역자치단체장이라도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대구시장 본인이 원하지 않는 당대표가 선출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대통령과 대구시장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다. 대통령과 대구시장 사이의 일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설명된다면, 대통령과 나 사이의 일은 니체의 말로 설명될 것 같다. 어쩌면 대통령은 (특정한 사안에 한해서) 내 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AhtELWhuejg
벌써 식상할 만큼 많이 한 이야기지만 나는 홍준표를 참 많이도 고발했다. 대통령과 대구시장이 친구일 시절에는 아무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대통령과 대구시장의 사이가 안 좋아지니 반응이 폭발한다. 많은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 대구시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다뤘지만 이 영상만큼 압도적인 반응을 보인 적은 없다. 어제 올라온 지역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이 벌써 50만 뷰가 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 반응이 이상하다. 내가 4개월을 꼬박 갈아 넣은 작품인데 갑자기 대통령의 작품이 된 것 같다.
처음엔 좀 의아하기도 했으나, 누가 한 것이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통령과 내가 의도하는 바는 다르지만 왜인지 모르게 목표는 일치한 느낌이다. 내가 더 이상 내 손을 대지 않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댓글 하나만 적고 싶은 욕망은 어쩔 수 없다. "얘두라!! 그거 내가 한 거야!! 대통령이 한 게 아냐! 그냥 너희들이 이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거야!" 나의 신념이 항상 맞다고 생각하지 말자. 저기에 댓글을 달고 동조한 수천 명도 자신의 신념(대통령의 캐비닛)이 맞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