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은 제1심부터, 그에 앞서서는 사람 사이의 밀접한 법적 관계에서부터 제1심과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아래에서 위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지, 그와 반대로 대법원에서 하급 법원으로 그리고 사람 사이의 일에 논리를 하사하는 ‘현상’이 아닙니다. 피고는 10년 전 대법원 판례를 제시하면서 ‘이 사건 제1심 법원의 판단은 대법원 판결에 정면으로 반하므로 위법하다’라는 취지로 주장합니다. 이는 마치 10년 전 사진 한 장을 들고 와서 ‘지금 이 거리는 사진과 다르니 내가 찾는 곳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법은 입법이든 사법이든 언제나 과정입니다. 입법은 시민들의 요구가 입법기구(정치기구)에 전달되는 투입 과정과 시민들의 요구를 받은 입법기구는 그 요구에 충실한 법률을 제정·개정하는 산출 과정이 되먹이기(feedback) 식으로 반복·순환됩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 강화도 국민들의 요구에 입법기관이 응한 결과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군사독재 시절에 입법자가 시민들에게 선물하듯 법을 하사하였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입법과정이라고 말하는 법률가는 아무도 없습니다.
입법과 마찬가지로 사법도 언제나 과정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법적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숫자에 비례하여 법적인 분쟁도 발생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법적 분쟁은 사법기관의 문턱을 밟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 사이에서 분노하기도, 좌절하기도, 만족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은 국민의 법 감정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져 재판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사회상규나 업계의 관행, 관습, 사회통념이라는 이름으로 판결문에 등장하는 것은 어떤 한 사람이나 집단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급심과 상급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빛나는 순간은 언제나 상급심 법원이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사진으로 남지만 그 사진의 뒤에는 무수히 많은 삶과 판결들이 있습니다. 하급심이 기존의 관례에 동의하지 못하여 상급심의 문을 두드리는 수많은 시도가 없었다면 대법원의 판결은 광복 이래로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급심은 하급심에게 논리적 해석의 지침을 제공하고, 하급법원은 반대로 상급법원에 다른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합니다. 시민들은 대체로 사법부의 판단을 수용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모여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법은 대법원의 독백이 아니라 시민과 법률가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피고는 아주 선명한 사진 한 장을 들고 와서 ‘그 사진과 맞지 않는 모든 현상’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사법이 과정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였다면 ‘2010년 사회의 극히 한 단면만을 보여주는 판례 하나’가 아니라 통상임금의 발전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연결해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 대법원은 종래 임금 이분설에 따라 ‘근로의 대가’로 인정되는 임금만 통상임금에 포함하다가 1995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임금 이분설을 폐기하였습니다. 그 후 대법원은 일할 계산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였다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는 일할 계산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1994년에 전 직원에게 지급되는 체력단련비는 통상임금이 아니었지만 1996년에는 통상임금이었습니다. 2011년에 지급되는 일할 계산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었지만 2013년에는 통상임금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10년 전에 재직자 조건이 붙은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었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저는 통상임금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법이 과정임을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