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S. Mill의 자유론 해제(3)

억압받는 의견이 오류일 경우에도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가?

by 이동민

억압받는 (일반적으로 소수의) 의견이 진리일 경우, 그런 억압을 지속하는 것의 해악은 명백하다. 우리가 그 의견이 진리임을 모른 채 계속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는 진리를 향해 단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모든 진리를 알고 있고, 상대방의 의견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사람의 사상을,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이 본인의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보통의 사람은 그런 오류를 허용할 경우 진리에 대한 빛이 가려져 혼란만 가중할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밀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오류임이 명백한 의견도 토론의 장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양화 기법 중에 홍운탁월(烘雲托月)이라는 것이 있다. 흰 종이에 달을 더 밝게 그릴 수 없으니 달 주변의 구름을 어둡게 채색하여 달이 더 밝게 보이도록 하는 기법이다. 밀이 말하는 진리가 아닌 주장도 홍운탁월의 구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진리임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오류인 주장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 주장에 대한 모든 반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류인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공론의 장으로 올라오는 것만으로 진리를 더욱 빛나게 만들 수 있다. 만약 모든 오류인 주장이 금지된다면 흰 종이 위의 다른 어떤 공백과도 다름없는 달처럼 진리도 그 가치를 잃고 말 것이다.



오류임이 명백한 주장의 두 번째 효용은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힘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다 보면 "실생활에 쓸모도 없는 미적분을 왜 배우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그리고 수학을 비롯한 학문을 그런 태도로 접근하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고등교육 이후에도 같은 태도로 진리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실생활에 요긴한 것, 쓸모 있어 보이는 공식 몇 가지만 외워서 박식한 척하는 사람들이 과거에 그런 태도로 '공부'라는 것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 새로운 것이나 생각할 거리는 해로운 것 정도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그런 태도를 넘어서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을 괴짜나 피곤한 사람 취급을 한다. 밀은 종교적 교리만 주입된 평신도와 금서까지 읽을 수 있는 사제의 예를 들어 금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민중에게 허용되지 않는 금서를 본인들만 읽는 것이 엘리트가 민중을 지배해 온 방식이다.



오류인 주장이 토론의 장에 나오는 공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진리라고 받아들인 주장'을 비판의 장 위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에 대한 성찰과 겸손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은 때로 신념에 너무 경도되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 공격받으면 자신이 공격받는 것보다 더 격렬한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신념 그 자체가 아니라 신념을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진리라고 믿고 있는 신념을 비판의 장 위에 올려놓으면 인간은 신념과 분리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인격적 성숙을 도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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