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억압하고자 하는 의견이 옳을 경우,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허용함에 따른 효용
J. S. 밀Mill은 국가가 법을 통해, 아니면 다수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통해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큰 해악이라고 보았다. 그런 행위가 해악인 논거는 억압하고자 하는 의견이 옳은 것인 경우와 억압하고자 하는 의견이 오류일 경우가 다르기 때문에 장을 나누어 설명한다. 억압하고자 하는 의견이 옳을 경우, 그 의견을 마음껏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소수의 의견에 따라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
먼저, 억압하고자 하는 의견이 옳은 것일 경우 인류는 오류를 진리로 대체할 기회를 빼앗는다.
If the opinion is right, they are deprived of the opportunity of exchanging error for truth.
권력을 통해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것을 억압해 온 사례는 무수히 많다. 권력은 그것이 가진 속성 상 보수적이다. 개혁과 진보라는 것은 권력의 재분배 내지 그 구조의 타파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억누르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억압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권력을 가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성과 논리의 귀결이 아닌 권력자의 주장과 의견을 맹신하는 부류이다. 밀도 그런 자들을 특별히 더 비판적으로 바라본 듯하다.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일수록, 통상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는 "세계"는 완벽하게 옳고 절대로 틀릴 수 없다는 암묵적인 믿음 위에서 그 세계가 지닌 의견들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for in proportion to a man`s want of confidence in his own solitary judgment, does he usually repose, with implicit trust, on the infallibility of "the world" in general.
현재 진리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소수의 의견인 때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진리라고 믿을 수 있는 것들(우리에겐 자명하지만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은 소수 의견이 겪었던 박해와 무관심을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진리도 미래에는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옳음이 절대적이라고 하더라도 좋음은 항상 가변적인 것이다. 우리의 가치관과 태도가 옳음과 좋음의 사이 어디에서 정해진다면 그것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는 잘못된 행동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예컨대 모든 가치관과 태도가 가변적이라면 지금 우리는 단식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폭식을 한 자들을 비난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는 말인가의 문제이다. 밀Mill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의 삶의 목적들을 이루는 데 필요한 행동들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데 충분한 확실성은 존재한다. There is no such things as absolute certainty, but there is assurance sufficient for the purposes of human life.
우리는 단식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폭식을 하는 자들을 비난하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런 행위로 인해서 우리 사회는 아픔을 가진 자들에 대해 숙고하고, 한 번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과거의 일부 권력과 사회적 압력을 통한 억압이 그른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가 현재 행사하는 권력과 압력도 그와 비슷한 정도로 옳지 않을 가능성은 없을까? 다시 말해, 우리의 판단은 과거 조상들의 판단보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옳은 판단인가? 그에 대한 밀Mill의 답변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전반적으로 우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Why is it, then, that there is on the whole a preponderance among mankind of rational opinions and rational conduct?
자신의 잘못들을 고쳐나가는 특질이다. That his errors are corrigible. 인간은 토론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 He is capable of rectifying his mistakes by discussion and experience.
소크라테스는 이미 충분히 훌륭했던 그리스의 모든 철학자를 다 합한 것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였고, 예수도 그 시대를 뛰어넘는 사상가(누군가에게는 예언자이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신 그 자체인)였지만 불경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우리가 지금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은 많은 용기 있는 사상가들이 때로는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진리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들이다. 진리는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어서 박해에도 불구하고 순교로써 더 빛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진리는 잘못된 권력과 사회적 압력이 아무리 짓밟아도 언젠가는 저절로 피어나는 꽃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정신적 자유의 절대적 보장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