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과 하인츠 딜레마
당신이 외부와 쉽게 교류할 수 없는 마을에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당신의 배우자가 매우 희귀한 병에 걸렸고,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는 당신과 같은 마을에 사는 약사에게 있다. 당신은 약사에게 그 약을 팔라고 하였으나 약사는 당신이 지불할 수 없는 높은 가격을 제시한다. 당신에게는 다른 마을에 가거나 돈을 빌릴 수 있는 선택지는 차단되어 있다. 당신은 약을 훔칠 것인가? 아니면 배우자가 죽게 둘 것인가? 둘 중에 하나의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 Heinz`s Dilemma
사람이 갓 태어났을 땐 아무런 도덕적 감정이 없다. 도덕은 인간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권장해야 할 것을 쾌(快)와 선(善)으로 피해야 할 것을 고(苦)와 악(惡)으로 연결해 놓은 기제이다. 만약 도덕감정 중에 타고나는 것이 있다면 원시 부족사회를 유지하는 인간 공동체에도 도덕이 존재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것이 발견되었다는 연구는 없다. 아끼는 감정이 드는 대상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주는 정도의 행위를 우리는 도덕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그것은 동물의 행동에서도 관찰된다.
로렌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 1927-1987)는 인간이 일정한 단계를 거쳐 도덕적 발달을 이룬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도덕적 발달 단계는 크게 전인습적 단계, 인습적 단계, 후인습적 단계로 나누어지고 각 단계는 하위의 두 단계로 세분화된다. 다시 말해 인습적 단계(conventional level; 인습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의미를 고려할 때 관습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 좁은 의미의 사회화가 된 단계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를 기준으로 사회화가 되기 전 단계와 그것을 초월한 세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사회화가 되기 전 단계 중에서도 1단계는 처벌과 복종 단계이다. 아이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처벌할 수 있는 대상자의 관념에 복종한다. 하인츠 딜레마에서 약을 훔치면 처벌될 수 있으니까, 반대로 배우자를 죽게 내버려 두면 처벌될 수 있으니까라는 이유를 말한다면 아쉽게도 1단계의 도덕적 발달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사회화 전 단계 중 2단계는 도구적 목적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좋은 것,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나쁜 것으로 연결한다. 감옥에 가는 것과 배우자를 살리는 것의 이익형량을 통해 행동을 선택한다면 조금은 사회화가 부족한 단계이다.
사회화를 이루고 나면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법과 규칙을 신경 쓴다. 3단계는 좋은 사람 원리가 지배한다. 내가 배우자를 살리지 않으면 비정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을까 봐, 내가 약을 훔치면 절도범이라는 나쁜 평판을 얻을까 봐 어떤 행동을 선택했다면 3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4단계는 준법정신과 질서가 행동선택을 강요한다. 약을 훔치는 것이 명백한 불법이라거나 약을 훔치는 것에 대한 처벌을 각오했으므로 그 행동은 더 이상 비판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설명은 4단계 수준에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화를 초월한 발달단계에 도달하면 사회계약으로서의 법(5단계), 보편적 가치(6단계)에 따라 행동한다. 5단계는 법은 규율이기 이전에 사회계약의 하나임을 파악하고, 그것이 구성원의 행복추구를 방해한다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단계이다. 6단계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단계라고 하는데, 사실 철학적으로 보자면 보편적 가치에 대한 합의가 자유주의적 태도이냐 공동체주의적 태도이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콜버그의 잣대만으로 이를 판단할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실제로 5단계와 6단계는 구별의 실익이 크게 없거나 단계의 선후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수 존재한다.
J. S. Mill은 1873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콜버그를 알지 못한다. 그는 사상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허용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기독교 도덕과 기독신앙을 사례로 들었다. 기독교 도덕에 따라 가르침에 무작정 순응하고 권위에 복종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인해 기독 신앙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억압한다면, 그들은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왜 옳은지에 대해' 절대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만약 밀이 콜버그의 이론을 죽기 전에 만났다면 콜버그를 크게 칭찬했을 것이다. 기독교를 벗어난 어떤 공동체의 도덕도 그것을 단지 주입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옳다면 왜 옳은 것인지'를 절대 설명할 수 없다. 우리의 비판적 사고는 그름을 '규정'해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름을 '설명'하는 것에서 길러진다.
그러니까 어릴 때 아이를 고무호스로 때리면 안 된다. 1단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