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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동법

1일 1 노동법 - 19

직상 수급인과 원수급인의 직접 지급 의무

by 이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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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약도 사적 자치의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내가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임금을 줄 필요도 없고, 임금을 요구할 수도 없다. 따라서 노동자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간접 계약의 형태가 현대 사회의 문제 중 하나로 거론된다. 간접 고용은 크게 파견과 도급의 형태로 나눠지는데, 생산직 공장에서는 파견의 형태가 주로 나타나고, 건설현장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도급(용역) 형태의 간접 고용이 많이 생기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반장이 인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공사를 한 후에 인부들의 임금을 떼먹는 경우가 많고, 우리 근로기준법은 이를 막기 위해 반장(비건설업자)이 임금 지급을 하지 못할 경우 반장에게 일을 시킨 회사(직상 수급인; 직상은 바로 위라는 뜻이고 수급인이란 일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도 반장과 연대해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반장에게 일을 시키는 회사 입장에서는 반장에게 인부들의 임금을 다 주는 것보다(반장이 횡령할 염려가 있으니) 인부들에게 직접 주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제도가 바뀌어도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제도가 시행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많은 반장들은 여전히 인부들의 임금을 자신이 대신 받고 그중 일부를 착복한다.




건설업에서 직상 수급인의 직접 지급 책임(제44조의3 제1항)


앞에서 설명한 근로기준법 제44조의2 조항은 비건설업자(주로 반장 등 일정한 규모의 회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인부들의 임금을 착복한 경우에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건설사업 등록을 한 회사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건설사업자 중에서도 사실상 빚이 더 많은 회사가 많고, 도산 이후에 이름을 바꿔 새로운 회사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도산하면서 많은 경우 인부들의 임금을 주지 않는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우리 근로기준법은 안전장치를 하나 더 마련하였다.


근로기준법 제44조의3
제1항 공사도급이 이루어진 경우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때에는 직상수급인은 하수급인에게 지급하여야 하는 하도급 대금 채무의 부담 범위에서 그 하수급인이 사용한 근로자가 청구하면 하수급인이 지급하여야 하는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근로자에게 직접 지급하여야 한다.

1. 직상 수급인이 하수급인을 대신하여 하수급인이 사용한 근로자에게 지급하여야 하는 임금을 직접 지급할 수 있다는 뜻과 그 지급방법 및 절차에 관하여 직상 수급인과 하수급인이 합의한 경우

2. 지급명령, 하수급인의 근로자에게 하수급인에 대하여 임금채권이 있음을 증명하는 집행증서, 이행권고결정,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집행권원이 있는 경우

3. 하수급인이 그가 사용한 근로자에 대하여 지급하여야 할 임금채무가 있음을 직상 수급인에게 알려주고, 직상 수급인이 파산 등의 사유로 하수급인이 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명백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내가 A 건설회사에 사무실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면, 내가 일을 준 사람이기 때문에 도급인이 되는 것이고 A 건설회사는 일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수급인이 된다. A 건설회사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인력으로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 골조, 마감, 인테리어 등 큰 부분으로 나누어 각 다른 회사에 일을 맡긴다. 예를 들어 A 회사가 골조 공사를 B 건설사에 맡긴다면 A와 B 사이에는 A가 다시 도급인이 되고 B가 수급인이 된다. 나와 A 그리고 B의 관계에서 보면 내 기준으로 B는 다시 일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하수급인이라고 한다. B 회사도 공사를 직접 하기보다는 철근 파트, 콘크리트 파트, 비계 설치, 지지대 설치 등으로 공정을 나누어 각 다른 회사에 맡긴다. B가 철근을 놓고 철근끼리 서로 엮는 작업은 C 회사에 맡긴다면 다시 하도급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 공사를 준 나부터 시작해서 A, B, C 순서의 도급계약이 체결된다. 나부터 C 방향을 하방(下方) C부터 시작해서 나까지 오는 방향을 상방(上方)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C 기준으로 바로 위의 수급인은 B가 되고 C의 직상 수급인(바로 위의 수급인)은 B이다.


만약 C가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할 경우 노동자들은 다음 요건이 갖추어질 때 B 회사에 직접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 물론 B 회사가 C 회사에 줄 돈이 남아 있을 경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첫째, 공사를 하기 전에 B 회사가 C 회사의 임금 집행 의지나 능력을 의심하여, 두 회사 사이에 어떤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B 회사가 C의 노동자에게 직접 임금을 줄 수 있다는 합의를 미리 한 경우이다. B 회사로서는 C 회사의 자금 지급 능력이 의심스러운데 일은 맡겨야 할 경우 차후에 있을 분쟁을 미리 방지하기 위하여 C 회사가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일정한 기간이 지날 경우 B 회사가 직접 인부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좋다. 이런 사전 협의가 있다면 C 회사의 직원이라고 하더라도 B 회사에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


둘째, C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C 회사를 상대로 임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해서 승소 확정이 된 경우이다. C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 C 회사가 돈을 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C의 직상 수급인인 B 회사는 노동자들이 C 회사에 대한 판결문을 가져오면 C 회사에 줄 돈을 주지 않고, 그 대신 인부들에게 임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


셋째, C 회사가 '우리 회사가 인부들에게 줄 돈이 있는데, 회사가 파산해서 줄 수 없다'라는 사실을 통지하면 B 회사는 C 회사가 아니라 그 인부들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 다만, 현실에서는 파산 등이 임박한 회사가 대표이사 개인으로 돈을 수령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서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건설업에서 원수급인의 직접 지급 책임(제44조의3 제2항)


직상 수급인도 지급 능력이 의문스럽다면 건설 노동자는 다른 방법을 취할 수 있다. 바로 원수급인(元受給人)에게 임금을 청구하는 것이다. 원수급인이란 최초의 도급계약을 체결한 수급인으로 위의 사례에서는 A 회사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원수급인은 지급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C 회사를 상대로 임금 청구에 관한 소송을 하여 승소 확정이 된다면 C 회사가 아닌 원수급인에게 임금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원수급인을 상대로 한 청구는 직상 수급인과 달리 확정판결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고, 직상 수급인에게 적용되는 다른 사유(임금 직접 지급의 사전 협의, 파산 등의 발생)로 청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로기준법 제44조의3
제2항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발주자의 수급인으로부터 공사도급이 2차례 이상 이루어진 경우로서 하수급인이 사용한 근로자에게 그 하수급인에 대한 제1항 제2호에 따른 집행권원이 있는 경우에는 근로자는 하수급인이 지급하여야 하는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원수급인에게 직접 지급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원수급인은 근로자가 자신에 대하여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금액의 범위에서 이를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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