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채권의 우선변제 대상인 사용자의 총재산(2)
이전의 판례(대판 1999. 2. 5. 선고 97다48388 판결)에서 사용자는 '근로계약의 당사자로서 임금 채무를 1차적으로 부담하는 사업주'로 한정하기 때문에 건설 하도급에 있어서 '하수급인과 연대책임을 질 뿐인 직상수급인(또는 원수급인)'의 재산은 임금의 최우선변제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즉 노동자는 하수급인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였을 뿐이고, 하수급인에게 일을 맡긴 직상수급인은 노동자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므로 근로기준법 제38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법의 해석과 적용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라고 생각하는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판례는 긴 시간적 단위로 보자면 언제나 변경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보통 비슷한 사건에 대한 법원의 해석 변화로 추동된다.
건설 하도급에서 직상수급인의 재산이 최우선변제 대상이 아니라고 했던 것과는 달리 파견 근로에서 사용 사업주의 재산은 최우선변제 대상이라는 최신 대법원 판결이 있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집을 짓기 위해 A 건설회사와 건축물 공급 계약을 하였다. A 건설회사는 B 반장에게 콘크리트 타설 부분을 하도급 주었고, B 반장은 자신이 데리고 온 인부에게 임금을 주지 않았다. 임금을 받지 못한 인부들은 재산이 없는 B 반장이 아니라 A 건설회사를 상대로 임금을 달라고 할 수 있다(근로기준법 제44조의2 제1항). A 건설회사가 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고, 유일한 재산이 건설회사 소유의 건물이라면, 노동자들은 그 건물을 팔아서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건물에 건물의 가액보다 많은 저당이 잡혀 있다면 노동자들은 저당보다 후순위로 분배를 받기 때문에 임금을 전혀 받을 수 없다.
하지만 파견에서는 법원의 판단이 달랐다. 단순 제조를 업으로 하는 C 회사(파견법에서 이를 사용 사업주라 한다)가 있다. C 회사는 비용을 줄일 목적으로 용역회사인 D 회사(파견법에서 이를 파견 사업주라 한다) 직원을 자신의 사업장으로 데리고 와서, 데리고 온 노동자들에게 C 회사 직원들과 동일한 업무를 하도록 지시했다. 따라서 C 회사와 D 회사의 직원 사이에는 근로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 C 회사가 D 회사에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서 임금 체불이 발생하였다면, C 회사는 D 회사와 연대하여 임금 지급 책임을 진다(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34조 제2항). 마찬가지로 C 회사가 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고, 유일한 재산이 회사 소유의 건물이라면, 노동자들은 그 건물을 팔아서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위의 사례와는 달리 그 건물에 아무리 많은 저당이 잡혀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3개월분 임금은 최우선변제 대상이라는 것이 이번 판례의 주된 취지이다.
근로기준법 제44조의2 제1항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34조 제2항은 완전하게 같은 구조이다. 두 법의 취지도 같다. 하도급이나 파견 근로는 모두 간접고용에 해당하고, 간접고용이 단계를 거칠수록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업체(하수급인 또는 파견 사업주)의 임금 지불 능력은 불투명해진다. 따라서 마치 직접 고용한 것과 같은 효과를 연대 책임의 형식으로 부과한 것이다. 하지만 파견 사업에 대해서 인정하는 최우선변제를 건설업 하도급에서 인정하지 않을 어떤 이유도 없다. 따라서 최신 판례(대법원 2022. 12. 1. 선고 2018다3005286 판결 [배당이의])의 입장을 계기로 건설업 하도급에 관한 판례도 변경되어야 할 것이다.
사용 사업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근로자파견의 대가를 지급하지 아니하고 그로 인하여 파견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경우 사용 사업주는 근로자에 대하여 파견 사업주와 연대하여 임금 지급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이와 같이 사용 사업주가 파견법 제34조 제2항에 따라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 지급의무를 부담하고 그에 따라 파견근로자가 사용 사업주에 대하여 임금채권을 가지는 경우, 파견근로자의 복지증진에 관한 파견법의 입법 취지와 더불어 사용 사업주가 파견 사업주와 연대하여 임금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경우 임금 지급에 관하여 사용자로 본다는 파견법 제34조 제2항 후문 및 근로자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려는 근로기준법 제38조 제2항의 규정 취지를 고려하여 보면, 파견근로자의 사용 사업주에 대한 임금채권에 관하여도 근로기준법 제38조 제항이 정하는 최우선변제권이 인정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한편, 사용 사업주의 파견근로자에 대한 임금 지급 책임을 인정하는 파견법 제34조 제2항을 적용하기 위하여 당해 근로자파견이 파견법 제5조의 파견 사유가 있고 제7조의 허가를 받은 파견 사업주가 행하는 이른바 '적법한 근로자파견'에 해당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