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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승인 후 퇴직연금채권을 받을 수 있는지

by 이동민

쟁점: 한정승인 후 퇴직연금채권을 받을 수 있는가?


중소 규모의 기업은 퇴직금을 적립하지 않아서, 근로자들이 퇴직할 때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2004년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이 제정되었고, 기업은 퇴직금을 지급하는 대신 확정급여형 퇴직 연금제도(DB; defined benefit),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DC; defined contribution), 개인형 퇴직연금(IRP;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중에 한 형태로 퇴직연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로 DC형 퇴직연금제를 많이 이용하는데, 기업은 근로자가 받는 급여의 1/12을 매달 적립하고, 근로자는 퇴직 후 이를 연금의 형태로 수령하는 제도입니다.





사실관계


A는 2019. 10. 24. 사망하였고, 상속인으로는 부(B)와 모(C)가 있었습니다. A가 사망할 때까지 모아놓은 재산보다 빚이 많은 상태였기 때문에 B는 상속포기를, C는 한정승인을 신청하였습니다. 망인 기준으로 빚이 더 많은 경우 공동상속인 중 한 명은 한정승인을 신청하고 나머지는 상속포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한정승인신고가 법원으로부터 수리되고 나면, 약 2개월의 채권자 수색 절차를 거쳐 상속재산에 대한 파산신청까지 해야 상속에 대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됩니다. 상속재산에 대한 파산이란 망인이 남긴 재산을 모두 돈으로 바꾼 후 채권자들에게 나눠주는 절차를 말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A가 가입한 퇴직연금채권(16,363,210원)이 파산재단에 포함되어 채권자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파산재단에 포함되지 않아 상속인들이 수령할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대법원 2024. 1. 4. 선고 2022다285097 판결)


1)「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이라 한다)은 '상속재산으로 상속채권자 및 유증을 받은 자에 대한 채무를 완제할 수 없는 때에는 법원은 신청에 의하여 결정으로 파산을 선고한다.'고 규정하여(제307조), 개인인 채무자에 대한 파산절차와 별도로 상속재산 자체에 대한 파산절차를 두었다. 상속재산파산절차는 상속재산 자체에 파산능력을 인정하여 채무초과상태의 상속재산을 엄격한 절차에서 공평하게 청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절차로서, 이에 대하여 '상속재산에 대하여 파산선고가 있는 때에는 이에 속하는 모든 재산을 파산재단으로 한다.'라고 정함으로써(제389조 제1항), 채무자가 개인인 경우와 달리 파산재단의 범위에 관한 별도의 독립된 규정을 두었다. 이와 같이 상속재산 자체를 채무자로 보는 상속재산파산절차의 성질ㆍ목적ㆍ취지 등을 종합하면, 채무자가 개인인 경우에 적용되는 채무자회생법의 규정들이 상속재산파산절차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압류할 수 없는 재산은 파산재단에 속하지 아니한다.'라고 정한 채무자회생법 제383조 제1항 역시 상속재산파산절차에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


: 살아있는 사람에 대하여 회생이나 파산에 대한 절차가 따로 규정되어 있고, 사망한 사람의 재산에 대한 파산 절차가 별도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 대하여 회생이나 파산을 할 경우 '압류를 금지하는 채권'은 회생재단이나 파산재단에 속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망한 사람의 재산에 대하여 파산을 할 경우에는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절차와 비교했을 때 성질이나 목적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퇴직금은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압류가 금지되어 있는데, 이렇게 압류가 금지되어 있는 재산은 회생이나 파산을 하더라도 채권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재산이 아닙니다. 퇴직연금 또한 압류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 '상속재산에 대한 파산에도 자연인에 대한 파산이나 회생의 절차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더 판단할 필요도 없이 상속인들이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 대법원 판결에서도 분명히 밝히듯이 퇴직연금이 당연히 파산재단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2) 그러나 상속재산파산절차에서도 피상속인 및 그 가족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려는 사회적ㆍ정책적 요청에 근거한 압류금지재산의 경우에는 그 취지가 참작되어야 한다. 즉, 채권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서만 압류를 금지하는 민사집행법 제246조 제1항 제4ㆍ5호에서 정한 퇴직금채권ㆍ퇴직연금채권과 비교하여「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하 ‘퇴직급여법’이라 한다) 제7조는 ‘퇴직연금제도(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 포함)의 급여를 받을 권리는 양도 또는 압류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퇴직연금수급권 전액에 관하여 압류가 금지되는바(대법원 2014. 1. 23. 선고 2013다71180 판결 참조), 이는 퇴직급여제도의 설정ㆍ운영을 통해 마련된 경제적 수입이 근로자 본인은 물론 그 가족의 안정적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기초가 되도록 하려는 사회적ㆍ정책적 고려 등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퇴직급여법의 목적과 취지, 입법을 통하여 퇴직급여법상 퇴직급여채권에 대해서는 민사집행법상 일반적인 압류금지채권에 비해 압류금지의 범위를 확대시킨 점 등을 종합하면, 퇴직급여법상 피상속인의 퇴직급여채권은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을 채무자로 하는 상속재산파산절차에서 일반적인 압류금지재산과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파산재단에 속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한다.


: 압류금지 채권이라고 하더라도 상속재산 파산재단에 속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 판결에서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사망했을 경우 유가족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려는 목적도 있기 때문에 이런 목적을 고려했을 때 유가족에게 지급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아울러 3천만 원이 넘지 않는 소액사건은 대법원에서 심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이런 비슷한 사건에서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리는 사례가 종종 존재했기 때문에, 대법원은 이 사건 판결을 통해 퇴직연금은 유가족에게 주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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