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대립하는 당사자가 같이 손잡고(?) 사무실에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물론 실제로 손을 잡고 오진 않습니다). 특히 이혼을 원하는 부부가 이혼의 조건이나 이혼의 사유에 대해서 묻기 위해 같이 내방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진심으로 이혼을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례가 싸우다가 감정이 번져서 '변호사에게 물어보자'라면서 오는 경우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례도 이와 비슷한 사례입니다. 대립하는 당사자가 같은 변호사에게 자문을 받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었습니다.
주식회사 남양유업은 낙농제품 제조 및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된 주식회사이고, 홍원식(남양유업 회장), 이운경(홍원식의 처), 그리고 홍승의(홍원식과 이운경의 손자) 세 명(오너 일가이자 피고들)이 보유한 남양유업의 주식은 총 378,938주로 합계 지분율 52%의 최대 주주들입니다. 피고 오너 일가는 잇따른 경영 실책과 다른 업체 상품 표절 논란(마지막은 불가리스 이너케어 표절 문제)으로 여론이 악화되고 주가가 떨어질 조짐이 보이자 자신들의 지분 전부를 매각하려고 하였습니다. 한편 원고 한앤컴퍼니 유한회사는 투자목적회사로 오너 일가의 지분 전부를 인수를 계획하였습니다.
한앤컴퍼니 유한회사는 주식인수에 관한 법률자문 의뢰를 김장 법률사무소(흔히 '김앤장'이라고 부릅니다)에 의뢰하였고, 남양유업 오너 일가 또한 주식양도에 관한 법률자문 의뢰를 김장 법률사무소에 하였습니다. 김장 법률사무소는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대한민국 1위 법률사무소로 약 1,000명 이상의 변호사가 상근하고 있습니다. 물론 원고 회사가 자문을 요청한 변호사와 피고들이 자문을 요청한 변호사는 같은 회사에 근무할 뿐 다른 변호사입니다.
홍원식 회장은 지분 양도에 관한 계약이 모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돌연 마음을 바꿔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하였고, 원고 회사는 주식 양수 대금을 지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오너 일가의 지분 양도를 청구하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본인에게 효력이 발생할 의사표시의 내용을 스스로 결정하여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법률행위를 하는 대리인과 달리 ‘사자’는 본인이 완성해 둔 의사표시의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하지만, 대리인도 본인의 지시에 따라 행위를 하여야 하는 이상(민법 제116조 제2항), 법률행위의 체결 및 성립 여부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권한이 본인에게 유보되어 있다는 사정이 대리와 사자를 구별하는 결정적 기준이나 징표가 될 수는 없다. 그 구별은 의사표시 해석과 관련된 문제로서, 상대방의 합리적 시각, 즉 본인을 대신하여 행위하는 자가 상대방과의 외부적 관계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보이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하고, 이러한 사정과 더불어 행위자가 지칭한 자격․지위․역할에 관한 표시 내용, 행위자의 구체적 역할, 행위자에게 일정한 범위의 권한이나 재량이 부여되었는지 여부, 행위자가 그 역할을 수행함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자격의 필요 여부, 행위자에게 지급할 보수나 비용의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는 당사자와 그 밖의 관계인의 위임이나 국가․지방자치단체와 그 밖의 공공기관의 위촉 등에 의하여 소송에 관한 행위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사무를 하는 것을 직무(변호사법 제3조)로 하는 변호사가 각종 권리의무의 발생과 법적책임 등 복잡한 법률관계가 수반되는 당사자 사이의 계약의 체결을 위한 일련의 교섭 과정에 어느 일방을 위한 자문의 역할로 개입한 경우, 그 행위가 대리에 해당하는지 혹은 단순한 사자에 불과한지 다투어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 '변호사는 당사자 쌍방을 동시에 대리할 수 없는데, 이 사건에서 김장 법률사무소가 원고와 피고 모두에게 법률 자문을 했으므로 쌍방 대리에 관한 규정을 위반하였고, 이에 따라 주식 매매 계약 자체는 효력이 없다.'라는 것이 피고 오너 일가의 주장이었습니다. '사자'는 심부름꾼을 이야기하고 '대리'는 본인을 대신하여 법률행위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변호사가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활용하여 본인에게 특정한 조언을 해줬다면 이는 대리에 해당하고, 당사자 쌍방에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금지됩니다(그러니 이혼을 하실 거면 같이 오시면 안 됩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김장 법률사무소가 쌍방을 대리한 것은 무효'이지만 홍원식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쌍방 대리의 사실을 알면서도 주식을 매매하기로 하는 계약을 계속 진행시켰기 때문에 '사후 추인'에 의하여 무효인 하자가 치유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2024년 3월 4주차 기사가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