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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동법

손이 부러졌어요. 그래서 해고됐습니다.

그때의 나는 왜 너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을까.

by 이동민
작업 중에 손이 부러졌어요.


어눌한 말투의 외국인이 나에게 꺼낸 첫마디였다. 스리랑카 국적의 W는 벚꽃엔딩이 식상해지는 계절 무렵 사무실을 찾아왔다. 사무실을 찾아오기 1년 전 한겨울 그는 작업 도중 500kg 철제 코일에 왼쪽 손이 깔리는 산업 재해를 당했다. 그는 크레인을 조종하여 특정한 위치로 철제 코일을 옮기는 작업을 주로 맡아서 했다. 하지만 철제 코일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이 노후화로 인해 자주 흔들리면서 조정한 곳을 벗어나 안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사장에게 여러 번 건의했다. 크레인이 자주 흔들리니 고쳐달라고. 이렇게 가다간 누군가가 다칠 것이라고.




흔들리는 건 각목으로 조절하면 돼.


사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크레인을 고치는 비용은 많이 들 것이 뻔하니 사장은 작업자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선택을 했다. 크레인이 흔들리는 것은 각목으로 조절하라는 것이 사장의 지시였다. 철제 코일이 흔들릴 때 코일 끝부분부터 코일이 안착해야 하는 지점까지 작업자들이 사선으로 각목을 댄다. 그러면 철제 코일은 각목을 타고 각목 끝부분까지 미끄러져 원하는 지점까지 안착하리라. 다만, 그 과정에서 '약간'의 위험만 감수하면 된다. 내 위험도 아니지 않나.




병원 치료받게 해 주세요.


부상이 발생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다만 언제, 누가 다치느냐의 문제만 있었을 뿐이다. 각목을 대던 W의 손이 코일에 깔렸다. 그리고 그는 손에 개방성 골절상을 입었다. 뼈가 부러져서 살을 찢고 나왔다. 크레인은 서둘러 코일을 다시 들었고, 작업자들은 모두 W의 부상을 자신의 부상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공감의 무대를 사장은 '관객'처럼 보고 있었다. 부상은 2016. 1. 16. 토요일에 발생했지만, 사장은 토요일의 대학 병원 응급실은 치료비가 비싸니 월요일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한국인 관리자들은 개방성 골절이 일어난 부위에 밴드만 붙여주었다.




손이 부러졌으니 이제 출근하지 말게.


뼈가 튀어나와 살을 찢은 부위에 붙은 밴드를 보면서 주말 동안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이런 회사는 더 이상 다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했던 것인지, 기계가 고장 나면 새로운 부품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장은 해고 통보를 했다. 서로 헤어질 준비가 되어있는 연인 사이에서 마치 싫은 짓을 골라서 하는 것처럼. 헤어질 구실을 찾았던 사람처럼. 모든 인연이 뜨겁게 시작해 차갑게 끝나는 것처럼.




원고가 어떤 이유로 우리나라에 왔는지 대리인은 알지 못합니다. 아마 장밋빛 미래만을 꿈꾸며 온 것은 아닐 겁니다. 이미 스리랑카에서 온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원고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고 원고도 그런 경험담을 한둘쯤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인간답지 못한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여기 대한민국에 왔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그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제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됐습니다. 민족주의의 아집에 빠져 다른 민족 사람은 마치 기계와 같이 취급해도 된다는 생각은 버릴 때가 됐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답지 않은 취급을 받았던 원고의 과거를 일부나마 위자 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이와 비슷한 사건의 맨 앞에 놓여 제2의 원고가 언젠가는 없어질 수 있도록 인본주의적인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2017. 5. 16. 준비서면 中




그때 나는 왜 너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을까. 왜 나는 항소심의 힘든 길을 너 혼자 걸어가도록 놔뒀을까. 너의 눈에 나는 자신의 손을 부러뜨린 국가의 쁘띠 부르주아처럼 보였을까. 지금의 내가 그때의 너와 나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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