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를 읽고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본 규정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라는 명칭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와 달리 형법 제307조 제2항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해서 전자보다 중하게 처벌하고 있는데, 형법 제307조는 공연히 적시된 사실을 놓고 '허위'인지 여부에 따라 불법의 경중을 구분하여 취급하고 있다. 제307조 제2항의 구성요건이 '허위의 사실'이라고 기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1항에서 말하는 사실은 곧 '진실한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판례는 다소 모호한 설명을 하고 있다. 즉, 대법원은 "제307조 제1항의 '사실'은 제2항의 '허위의 사실'과 반대되는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에 대치되는 개념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 한국 형사정책 연구원, 2018, p. 84
7,000원이나 주고 한국 형사정책 연구원에서 발간한 논문을 사서 읽었는데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형정원의 연구위원이라고 해서 형법에 대해 다 잘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모른다고?'라는 말은 나오지 않아야 한다.
사실의 반대는 허위 사실?
리걸 마인드가 자리잡지 않은 일반인은 사실의 반대를 허위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수준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법률 용어가 일반 용어와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이다. 법률 용어가 아닌 사실fact은 진실을 함의하고 있다. 그러니 일반 용어에서 사실의 반대는 허위이다. 그리고 일상의 용어에 한정하자면 사실의 반대가 허위이기 때문에 '허위 사실'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가령 허위 보도, 허위 공표 등의 단어는 가능하지만 서로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를 같이 쓴다는 것이 모순이다. '검은 하양'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허위 사실'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법률 용어로 이를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의 반대는 의견
법학에서 사실의 반대는 의견이다. 이 명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과 '의견'의 정의definition부터 알아야 한다. 사실은 그것의 존재와 부존재를 판단할 수 있는 과거 내지 현재의 상태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사실을 말한다는 것은 '사건event의 진술'을 의미한다. 그 이벤트가 과거 내지는 현재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허위 사실이 된다. 반대로 의견은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가치평가를 의미한다. 사실이 물리 세계에 대한 진술이라면, 의견은 정신세계의 진술이다. 명백하게 반대이지 않나. 예를 들어 '저 사람은 2022. 2. 22. 아침 모텔에서 나왔다'라는 진술은 그것이 발생하든 하지 않았든 법학에서는 사실이고, '저 사람의 품행은 바르지 않다'라는 것은 의견에 해당한다. 물론 '너는 도둑놈이다'라는 진술처럼 맥락에 따라서 사실(절도행위를 범한 자)일 수도 있고, 의견(마치 도둑질을 한 것처럼 부도덕한 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맥락에 따라 해당 발언은 사실과 의견의 어느 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지 중첩적인 지위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사실과 허위 사실은 중첩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예컨대 '2022. 2. 22. 모텔에 간 이벤트'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입증에 실패하면 법원에서는 허위 사실로 본다. 반대로 실제로 그런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거짓 증언 등을 통해 일어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럴 때 그 명제는 사실이면서 동시에 허위 사실이다.
판례는 다소 모호한 설명을 하고 있다?
판례가 모호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정원 연구위원들이 위의 정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일상의 용어에 한정하여 판례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평가하려면 적어도 그 사람만큼은 공부하고 평가를 해야 한다. 만약 내가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고 학생들의 형법적 지식을 평가한다면 누가 그 학점을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또한 즉, 대법원은 "제307조 제1항의 '사실'은 제2항의 '허위의 사실'과 반대되는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에 대치되는 개념이라고 보아야 한다.라는 문장을 보면 큰 따옴표도 닫혀있지 않고, 주술 관계도 호응하지 않는다. '대법원은'으로 시작하였다면 '라고 판단한다' 정도로 마쳐야 한다. 그 외에도 49.9%를 '과반수 정도'라고 표현하는데, 과반수는 정도로 표시할 수 없다. 그럴 땐 '근반近半'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 여러모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