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는 스스로 꼰대임을 모른다.

게다가 꼰대에서 탈출하기는 매우 힘들다.

by 이동민
"큰 돈 버시긴 힘드시겠네요"는 말이 어째서 "사무실의 운영원칙을 돈을 기준으로 평가" 한 것이 되는걸까요. 그저 하시는 일에 대한 감상일 뿐 아니었을까요. 누군가는 큰 돈을 추구하고 누군가는 큰 돈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큰 돈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큰 돈 버시긴 힘드시겠네요"라고 말해도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도 저는 그 일이 좋습니다" 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그게 "악플"로 들린다는건 본인 스스로에게 "큰 돈"에 대한 미련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장사하시는 사장님들께 "식사는 하셨어요" 수준으로 건네는 "손님은 좀 있습니까?" 도 마찬가지고, 이게 불편한건 예민한게 맞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리고 이 댓글을 단 사람은 읽지도 않고 고치지도 못하겠지만, 내 직업이 젊은 친구들을 가르치는 선생인지라 위의 발언이 왜 꼰대임을 자인하는 것인지 그리고 무례한 것인지 하나씩 알려주는 글을 쓴다.



"큰 돈 버시긴 힘드시겠네요"는 말이 어째서 "사무실의 운영원칙을 돈을 기준으로 평가" 한 것이 되는걸까요.


첫 번째 문장부터 꼰대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하셨다. 이게 왜 꼰대인지 모른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위험한 수준이니 잘 살펴보시라. 나는 직업상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시간이 많다. 고등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상담을 요청할 때도 있고 대학생들이 강의 중에 다른 진로에 대해 묻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자신의 꿈과 비전을 말하는 젊은이에게 '큰돈 벌긴 힘들겠네.'라고 말해보라.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첫마디로. '변호사 사무실의 금기어'라는 제목으로 실제 금기어까진 아니지만 의뢰인들이 지켜주셨으면 한다는 '매너'를 적은 글에 '큰돈 벌긴 힘들겠다'라는 댓글은 아무리 좋게 봐도 비아냥이다. '다른 변호사들은 배알 꼴리는 것도 참는데 참 깐깐하게 군다'라는 맥락을 읽지 못한다면 나는 반대로 당신에게 '국어 공부를 좀 더 하시라', 아니면 '다른 사람과 일방적이 아닌 열린 소통을 좀 하시라'는 충고를 드리고 싶다.



큰 돈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큰 돈 버시긴 힘드시겠네요"라고 말해도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도 저는 그 일이 좋습니다" 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40대 이상 남자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 40대 이상 남자이다. 이런 댓글을 남기시는 분들은 현실 세계에서 어떤 대화와 소통을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악플을 단 사람은 정상이고, 그것이 악플이니 주의해달라는 글에 왜 그렇게 예민하냐니. 돌을 던져놓고 당신 맷집은 왜 그렇게 약하냐니? 사람마다 취약한 정도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작은 말이나 행동에도 상처를 받고 다른 어떤 사람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개인의 취약성과 상관없이 무례한 말은 존재한다. 그러니 무례한 말을 한 사람을 먼저 지적하지 않고 그 말에 왜 상처받느냐, 왜 신경 쓰느냐는 말은 무책임하고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게 "악플"로 들린다는건 본인 스스로에게 "큰 돈"에 대한 미련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꼰대의 다른 특징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자신의 뜻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나는 글 어디에도 '큰돈(표현이 웃기긴 하지만 이미 그 표현으로 몇 번의 댓글이 달렸으니 그대로 사용하겠다)'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한 적이 없다. 나는 부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시장경제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려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당신 뇌내에서 '전제 1: 글쓴이는 큰돈을 추구하지 않는 '척'을 하는 사람, 전제 2: 그러나 돈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결론: 큰돈에 미련이 있는 사람'이라는 논리 구조는 완벽하게 사실과 다르다. 전제 1: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전제 2: 나는 돈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 아니라 매너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도 왜 그렇게 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기준으로 이미 큰돈을 번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돈이 많은 지 몰라도 당신이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이 많은 사건의 보수로 걸려있다. 나를 만나보지도 않으셨으면서 글 한쪽으로 내 깊은 내면까지 평가하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한다면 당신에겐 너무 버거운 것일까?



장사하시는 사장님들께 "식사는 하셨어요" 수준으로 건네는 "손님은 좀 있습니까?" 도 마찬가지고, 이게 불편한건 예민한게 맞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거를 타선이 없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재용을 처음 보는 사람이 이재용에게 '요즘 핸드폰은 좀 팔립니까?'라고 묻는 게 정상인가? 패션에만 TPO가 있는 게 아니라 대화에도 TPO가 있다. 당신이 만약에 일상적으로 장사하는 사장님에게 '손님은 좀 있습니까?'라고 물어오셨다면 당장 고치시길 바란다. 물론 고치지 않겠지만.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손님은 매출이다. 내가 당신에게 초면에 '월급 얼마 받으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순순히 대답해 주시겠나? 난 솔직히 이런 사람들을 보면 한 번씩 인류애가 사라지곤 한다.


'손님 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발화자가 보기에 손님이 없어야 한다. 일단 손님이 많아 자리조차 없다면 사장에게 이런 질문은 무용하다. 이런 사람들은 손님이 많은 가게에는 '손님이 참 많네요.', '장사 잘 되네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이다. 둘째, 사장님이 그 가게에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여야 한다. 모든 지점이 직영인 스타벅스에 가서 매니저에게 '여기 장사는 좀 됩니까?'라고 인사를 건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껏해야 산업 스파이 취급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발화자가 '식사는 맛있게 잘했습니다.', '산 옷은 잘 입겠습니다.' 정도의 인사도 못 할 만큼 대화의 기술이 없어야 한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면 들어오면서부터 '여기 손님은 좀 있습니까?'라고 묻지는 않는다. 보통 계산할 때 많이들 하는 말이다. 매출 걱정 대신에 교환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건 어떨까. 당신이 내 삶을 바꿔 줄 정치인도 아니지 않나.


띄어쓰기는 워낙 많이 틀리셨으니 넘어가겠다. 내용만 문제로 삼자면 정상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글쓴이가 자기 기준으로 예민하다고 느껴도 '저 사람 좀 예민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넘어간다. 나는 그게 정상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그런 말이 통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내 판단과 내 기준에 예민하면 꼭 거기에 '당신 예민한 사람입니다'라는 딱지를 공개적으로 붙이고 싶어 하는 사람 말이다. 진지하게 말씀드리는데 속에 있는 말이 통제가 되지 않는 증상이 심해지면 병이 된다. 내 안에 있는 욕구가 절제되지 못하고 나오면 그게 병이요, 그게 범죄다. 관음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사람, 욕설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아무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이 같은 맥락이다.


물론 어떤 댓글을 작성하시든 댓글 작성하는 사람 마음이다. 이것보다 훨씬 더 심한 댓글이 달려도, 심지어 비속어나 욕설이 있다고 해도, 나는 그것이 보기 싫다고 지우지도 않을 것이고, 내가 가진 알량한 법 기득권을 이용해서 당신을 고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껏 댓글을 다셔도 된다. 다만, 그렇게 달아 놓으시는 댓글은 내가 고이 박제를 해서 당신이 깨달을 날이 올 때까지 그것이 틀렸음을 알려주고자 한다. 그것도 내 자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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