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민 Aug 08. 2022

주먹은 항상 법보다 가깝다.

교양으로 시작해서 논문으로 끝내기(2)

 손은 본디부터 내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손은 항상 내 신체의 일부이고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손을 사용하는 것에 손에 대한 심오한 이해는 필요하지 않다. 손이 몇 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는지, 어떤 근육이 손가락을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지를 알지 못해도 우리는 손으로 수많은 작업을 한다.


 법은 반대다. 본디부터 내 것도 아니거니와 내가 만든 것도 아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니 내 의지대로 변하지도 않는다. 법을 사용하는 것에는 심오한 이해가 필요하다. 법적으로 정해진 요건과 효과를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러니 법이 주먹보다 가까울 수는 없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주먹은 항상 법보다 나와 더 가까운 곳에 있다.





 법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유치권(이것도 엄연한 권리이다)'을 법보다 주먹에 가까운 것으로 비유하는 것에 거부감은 있지만, 그보다 더 적절한 비유는 없는 듯하다. 유치권은 단순하게 말해 법보다 주먹에 가깝다.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법철학적인 명제에서 시작하자면 '법은 모든 사람 앞에 평등하다'. 이 말은 두 차원에서 적용되는데, 첫째는 법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말이다. 한 사람이 업무방해로 처벌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도 권력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형식적 평등이라고 하자. 

 두 번째는 조금 더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측면인데, 법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질과 소양, 능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내는 체계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질적 평등이라는 것은 사실 이것보다 훨씬 큰 것을 담고 있는 담론인데 이에 대해서 깊게 설명하지 않겠다.


 형식적 평등만 존재하는 영역은 법의 영역이 아니라 본능과 약탈의 영역이다. 이를 고급스러운 유희로 잘 승화시킨 장이 스포츠이다. 스포츠에서는 같은 룰이 적용된다. 승자는 메달을 걸고 패자는(그가 패배한 것에 어떤 이유가 있든 불문하고) 고배를 마신다. 그러니 스포츠의 영역에서라면 모를까 법의 영역에서 힘이 세다고 권리가 잘 보장되고, 잘생겼다고 권리가 덜 보장될 수는 없지 않은가?




 "쨔쟌!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유치권이 그렇다. 유치권의 제1요소는 점유이다. 점유란 '소유'에 관계없이 사실상의 지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즉, '누구의 것이냐'와는 상관없이 '누가 지금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라는 말이다. 유치권은 점유를 상실하면 같이 소멸된다.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면 유치할 권리도 같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말만 들어서는 무슨 '오징어 게임(드라마에서 나온 그 게임 맞다)'에서 몸통 밖으로 밀어내려는 수비 측과 몸통을 지나려는 공격 측의 몸싸움이 예상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슨 변호사가 그런 과격한 비유와 비약을 사용하느냐'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점유를 잃으면 유치권도 같이 소멸하지만 점유가 불법적으로 침탈된 것이라면 법적인 절차를 이용해서 침탈된 점유를 회복하고 유치권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자. 이들은 이미 유치권을 행사하기로 작정한 사람이고, 그들은 항상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다. 실제 현장에서도 유치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와 이를 빼앗으려는 자 사이에 용역 회사 직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만약 정말 신사적인 권리라면 이런 일이 왜 일어나겠는가? 나에게 그런 비난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집을 사고팔 때 용역 회사 직원을 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철학적인 영역을 떠나서도 유치권은 현실적으로 너무 비효율적인 권리이다. 우선 앞서 말한 것처럼 점유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용역이 동원된다. 그 사이 건물을 지은 건축주는 몇 번이고 바뀌게 된다. 경매를 통해 건물을 사려는 사람은 유치권이 행사되고 있는 것인지, 행사되고 있다면 행사금액은 얼마인지 정확한 권리를 분석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런 리스크는 경매가에 영향을 미친다. 낙찰되는 가격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낙찰가가 떨어지면 누구 손해인가? 결국 용역까지 동원해서 자신을 권리를 지키려던 그들의 손해가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유치권 행사 중이니 출입을 금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