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 시작해서 논문으로 끝내기(3)
깡통 전세
세입자 입장에서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단어이다. 특히 요즘처럼 고금리에 기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정도의 인플레이션까지 겹쳤다면 더욱 그렇다. 기준 금리 인상이 시중 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고, 금리가 인상되면 보통 12개월을 전후로 집값은 떨어진다.
(금리의 인하는 집값 상승으로 바로 이어지는 반면, 금리의 인상은 평균적으로 1년의 텀을 두고 집값 하락의 요인이 된다. 살 때는 과감하게 사지만 팔 때는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손절하는 슬픈 이치가 반영된 탓일까)
집값이 떨어지면 그 집에서 전세로 사는 사람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집이 경매로 나온다면 전세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운 좋게도 집주인이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경매로 매각될 일이 없으니 걱정이야 덜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집주인의 이런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
다음 세입자가 구해져야 보증금을 주지 안 그러면 여력이 없다.
사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이런 말을 들어도 달갑지 않다. 그래도 돈을 들여 경매를 진행하자니 너무 야박한 것 같기도 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절차가 복잡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걸 신경 쓰느라 제대로 된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것 같다. 여러모로 그냥 눌러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서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요? 그럼 저도 보증금을 주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습니다.
위의 사례에서 세입자의 권리를 동시이행의 항변권이라고 한다. 유치권과 많이 닮아 있는 이 권리도 '이행거절권'의 하나이다. 상대방도 보증금을 안 주고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집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공평하지 않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돈도 못 받고 건물을 지었는데 그 건물만 건물주에게 주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실제로 매우 닮아 있는 이 권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동시이행의 항변권은 원래부터 하나의 채권과 채무로부터 발생하는 권리이다. 다시 말해 위의 사례에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당시부터 계약 기간이 끝나면 세입자는 집을 돌려주고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 그런데 유치권은 다르다. 유치권에서 집주인의 원래 채권은 집을 지어 달라는 것이고 채무는 돈을 주는 것이다. 반대로 건축하는 사람의 채권은 돈을 달라는 것이고 채무는 집을 짓는 것이다. 굉장히 러프하게 말하자면 '짓는 것'이 원래 채무이지 '주는 것'이 원래 채무는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첫 번째에서 밝힌 것처럼 근거가 다르기 때문에 목적도 다르다. 동시이행의 항변권은 나만 먼저 이행을 하는 불합리함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한마디로 버티는 권리이다. 유치권은 나만 먼저 이행해야 함에 대한 불합리라기보다는 (다 지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다 지었으면 더 이상 이행할 게 없다) '돈을 받기 위해서'(우리는 이것을 '채권을 담보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존재하는 권리이다.
셋째, 사실은 이게 결정적인 차이인데, 동시이행의 항변권은 '채권(해달라고 할 수 있는 일)'과 '채무(해야 하는 일)'에 붙어있는 단순한 항변권이지만, 유치권은 단순한 항변권을 넘어 독자적인 '물권'으로 인정을 받았다(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이 논리 필연적인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비유를 들자면 같은 사탕인데 허름한 포장지에 싸서 사은품으로 주는 것이 '동시이행의 항변권', 고급 포장지에 싸서 독립된 상품으로 파는 것이 '유치권'이다. 그리고 '동시이행의 항변권'은 채권에 붙어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상대방(집주인)에게만 행사가 가능하지만 '유치권'은 독립한 물권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행사가 가능하다.
공평의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똑같은 이행거절권에 특별히 하나만 '유치권'이라는 예쁜 포장지에 싸서 독립된 상품으로 파는 것이 옳은 것일까? 더군다나 그 예쁜 포장지에 싸인 사탕을 사기 위해서 문자 그대로 '피 터지게' 싸운다면 국가가 그것을 방관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