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자신이 하는 선택의 손익계산서가 눈앞에 뻔히 펼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두 부류이다. 그것이 손해가 될 것인지 모르는 지능이 낮은 부류와 손해임을 알면서도 신념을 지키려는 부류. 공감능력이 없는 자들은 전자에 속한다. 물론 자신은 스스로를 굉장히 기민하고 손익을 잘 따지는 사람이고 생각하겠지만.
다윈과 도킨스의 한계
다윈에 따르면 이타적인 개체보다 이기적인 개체가 번식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그렇다면 한 집단 안에서는 이기적인 개체들이 주를 이룰 것이고 진화라는 것이 발생할 수 있는 충분히 긴 시간적 단위에서는 이타적인 개체는 말살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기적인 개체와 이타적인 개체가 적절히 섞여 있을까? 특히 다윈은 꿀벌과 같이 무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개체의 유전적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meme이 여기에서 처음 나온 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으리라)에서 모든 개체는 혈족과 일정 부분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니 혈족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더 멀리 퍼뜨릴 수 있는 기회라는 제한적인 설명을 했지만 그것은 그의 추측일 뿐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된 사실은 아니다. 게다가 그 설명은 유전자가 전혀 섞이지 않은 완전한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행위를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Tit-for-Tat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d는 그의 명저 협력의 진화The Evolution of Cooperation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갖는 한계를 수학적으로 극복했다. 그는 게임이론 전문가들에게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출전시켜 달라고 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룰이 간단하다. 언제나 배신이 더 큰 이득을 주지만 양쪽 이익의 총량은 서로 배신하지 않는 쪽이 더 크다. 예를 들어 A팀이 배신 B팀이 협력을 하면 A는 7점을 B는 1점을 얻는다. A와 B가 협력하면 각자 5점씩 얻는다. 둘 다 배신을 하면 둘 다 2점씩 얻는다. 상대방이 협력을 한다고 가정할 때 나도 협력을 하면 5점을 얻지만 배신을 하면 7점을 얻는다. 상대방이 배신을 한다고 가정할 때 내가 협력을 하면 1점밖에 얻지 못하지만 배신을 하면 2점을 얻는다. 상대방의 선택과 상관없이 나는 배신을 하는 것이 이득인 셈이다.
로버트 액설로드의 실험에 참가한 14개의 프로그램은 서로 다른 협력적 모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진화가 일어날 수 있을 만큼 많은 횟수로 게임을 반복하니 아주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처음에는 배신만 하는 프로그램이 점수를 많이 얻는가 싶었는데 같은 게임을 반복할수록 Tit-for-Tat이라는 아주 간단한 룰이 적용되는 프로그램이 선두에 섰다. 그 프로그램의 룰은 아주 간단했다.
1) 처음 보는 상대와는 무조건 협력하라.
2) 다시 만난 상대는 협력이든 배반이든 무조건 되갚아라.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 성경이 왜 도덕적 지침이 될 수 없는지 엄청난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했다. 신은 없을 뿐만 아니라(정확히 말하자면 도킨스는 불가지론자에 가깝긴 하다) 그 신의 지침을 적어놓았다는 성경도 도덕적인 방향을 제시하기에는 너무 남성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성경의 아성을 무너뜨리려 했던 그 앞에 로버트 액설로드의 연구 결과는 얼마나 충격이었겠나. '도덕적으로 살라'라는 말보다 '스마트하게 살라'라는 말이 대중을 훨씬 무방비로 만들지 않겠나. 그러니 그가 협력의 진화를 두고 '성경을 대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찬사를 보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발작 버튼, 지능
국내에 이미 유명한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신작-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는 현 미국 대통령의 흑역사가 담겨있다(비단 그 책뿐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 책 외에서는 그런 사실을 접한 적이 없다). 조 바이든은 첫 대통령 유세에서 자신의 로스쿨 성적에 대한 질문에 '전 학년 장학생에 3개 학위를 동시 취득했다'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는 가정형편 덕분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1개의 학위만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것을 보면 지능에 대한 발작 버튼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런데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그게 지능인지 모르는 지능 수준을 가지고 있어서 문제이지만 말이다.
친절하다고 남을 종처럼 부려먹으면 당신 주위에 누가 남겠나.
운전을 하다 보면 절대 양보하지 않고 과속으로 도로를 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반대로 최대한 양보하고 규정속도를 지키려고 한다. 양보운전을 하는 모든 사람이 바보라서, 비굴해서, 혹은 좋지 않은 차를 타고 다녀서 양보하는 게 아니다. 양보를 하는 사람은 양보와 규범을 지키는 행위의 손익계산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눈앞에 찍힌 플러스 마이너스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공감, 그거 진짜 지능이라니까. 참 안 믿으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