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식을 즐기지 않는다. 어쩌다 일반 음식점까지 운영하는 사장이 되다 보니 다른 가게에 가서도 위생과 관련된 부분들이 너무 잘 보여서다. 그저께는 타 지역에 재판이 오전, 오후에 각각 잡혀서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했다. 자주 가던 국밥집이었는데 어느새 국밥 가격이 천 원 올라있었다. 얼마 전에 천 원 올렸던 것 같은데 다시 올린 걸 보니 '요즘 요식업계가 힘들긴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마시려고 물통 뚜껑을 열었을 때, 물통 뚜껑에 물곰팡이가 하필 내 눈에 띄었다. 이런 물곰팡이가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기는 것은 아닌데, 이 작고 무지막지한 생명체가 버젓이 살아있다는 것은 아주 많은 사람이 곰팡이를 섭취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아주 살짝 구역질이 났지만 종업원을 불러 정중하게 부탁했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물통 좀 바꿔주시겠어요? (아주 작은 소리로) 여기 곰팡이가 있어서요."
곰팡이를 확인한 종업원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수 초 내로 평정심을 되찾은 듯했다. 그는 아주 평온한 얼굴로 침착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물통 바꿔드릴게요."
이게 이렇게 침착하게 말할 일인가?
다른 곳도 아니고 음식을 만들어서 제공을 한다는 사람이 기본적인 위생 관리도 안 하고 음식을 제공했는데 이렇게까지 침착할 일이라고? 내가 무슨 금전적인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적해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말은 들을 줄 알았는데 '죄송하다'는 딱 한마디 말만 듣고 이 사건이 아주 평온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위생관리가 안 된 식당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화를 낼 이유는 없었다. 나는 곰팡이가 슬어있는 물통의 물을 마시지 않았다. 식당의 다른 곳은 비교적 위생 관리가 잘 되어 보였다.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보았을지언정, 나는 손해 본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내 마음은 왜 상했을까? 사실 나는 종업원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상했던 것은 아닐까?
매매계약서요? 찾아보시죠?
국밥집에서의 사건이 있고 24시간이 지나서는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매매계약서의 존재 유무가 쟁점이 된 사건에서 상대방 변호사는 매매계약서가 없다고 딱 잡아뗐다. 우리는 매매계약서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 매매계약서상 당사자는 따로 존재한다는 입장이었다. 분명히 관련 형사사건에서는 매매계약서가 존재했다. 그리고 맙소사! 관련 형사사건은 본인들이 증거로 제출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관련 형사사건 원본 전부 및 관련 기관에 매매계약서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상대방 변호사는 아주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였다) 나에게 말했다. "매매계약서요? 찾아보시죠?"
손님과 나 사이의 적정 거리
사실 의뢰인을 대신해서 싸우는 일에 그렇게까지 상대방 변호사를 기분 나쁘게 할 필요는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아마 상대방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너무 감정적으로 이입한 것은 아니었을까? 변호사업을 한 지도 꽤 오래되어 보였는데 저렇게까지 의뢰인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어떻게 이 업을 이렇게까지 지속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저께는 손님으로부터 너무 멀어서, 어제는 손님이랑 너무 가까워서 당황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과연 손님들과 적정한 선을 잘 지키고 있는가? 어떤 때에는 사람이 그것보다 더 차가울 수는 없을 정도로 손님을 대하다가 어떤 때에는 너무 뜨겁게 그들을 대하는 나를 돌아보면서 세상은 그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뜨거울 땐 조금만 멀리서 차가울 땐 조금만 가까이서 그들을 대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