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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사무실에서의 금기어

도대체 이런 말은 왜 하시는 겁니까?

by 이동민

금기어라고 강하게 표현했는데 금기어까진 아니다. 그렇지만 10년 넘게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의뢰인들이 한 말 중 '굳이 이런 말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 것들을 꼽아보았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니 '저 변호사는 다른 변호사보다 까칠하구나'라는 정도로 읽고 넘어가셔도 좋다. 다만 몇 가지 말들은 정말 실례가 될 수 있거나 현행법을 어기는 것이니 주의하시기 바란다.



1. 이 판사님이랑 아는 사이인가요?


개인적으로 가장 불편하고 불필요한 말이 아닌가 싶다. 우선 나는 무변촌에서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사람이라서 다른 변호사들보다 더 아는 판사가 없다. 대도시에서는 그 지역 판사들과 변호사들이 모인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어떤 판사가 새로 발령받아 오면 환영회 같은 것도 하고, 아니면 법원과 간담회 같은 것도 한다고 들었다. 내가 사무실을 운영하는 곳은 지원도 없고 시법원만 있는 완전한 촌동네이다. 이런 곳에서 일하다 보니 그런지 몰라도 해당 사건의 판사와 아는 사이인지 묻는 질문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다. 법정에서 특정 변호사에게 개인적인 친분을 드러내는 판사들도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인가? 어쨌든 나는 아는 판사가 없다. 그리고 친분으로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니 그런 것은 묻지 마시라.




2. 아는 변호사가 있는데 여기로 온 겁니다.


아는 변호사가 있으면 그 변호사에게 가시라.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라면 더 신경 써서 사건을 처리해주지 않겠나. 아는 변호사가 있고, 본인이 그 변호사와 아주 각별한 사이인데 왜 나에게 온 것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내 주변에 나와 아주 친한 사람이 소송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수임료를 받지 않고 해결해주기도 한다. 10년 간 수행한 공익 무료 소송이 100건 정도 되는데 그중에 일부는 지인 사건이다. 다른 사람의 후광에 기대어 본인을 돋보이고 싶은 욕망인지, 아니면 아는 변호사가 있으니 알아서 일처리 똑바로 하라는 간접적인 경고든 별로 듣고 싶지 않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는 변호사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가시라.




3. 다른 변호사는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요.


인간은 확증 편향을 가지고 있다. 본인이 듣고 싶은 것, 본인이 알고 싶은 것 위주로 쉽게 받아들인다. 이런 편향적 인지는 상담 과정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다른 변호사는 사건이 된다고 말하는데 왜 변호사님은 패소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하시나요?' 정말 자주 듣는 말이고, 그만큼 듣기 싫은 말이다. 사건의 승소와 패소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나는 승소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평가하는 편이다. 항상 상담 과정에서 의뢰인의 상대방 입장에서 꼬치꼬치 캐묻는 편이다. 사건을 수임하기 전에 레드팀(Red Team) 역할을 내가 하지 않으면 그 소송은 패소하기가 쉽다. 승소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평가하는 것, 상담 과정에서 일부러 레드팀 역할을 하는 것은 다 의뢰인을 위한 행위이다. 신중한 소송을 하시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변호사를 찾으시겠다면 말리지 않겠다. 그 말을 해주는 다른 사무실을 가시라.




4. 이건 똑같은 판례가 있으니까 승소하겠죠?


엄격하게 말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 환상은 철저하게 깨 주는 편이다. 세상에서 똑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당신과 당신의 상대방 사이에서 일어난 이벤트는 딱 한 번이다. 멀티버스를 인정한다고 해도 그 사건은 다른 유니버스에서 발생하지 않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똑같은 사건도 똑같은 판례도 없다. 판례만 믿고 소송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 판례와 사장님 사건은 똑같지 않습니다.'




5. 변호사님 선임했으니까 승소하겠죠?

앞의 기출 변형에 해당한다. 변호사를 선임했으니 무조건 승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단순하게 생각해보시라. 상대방도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건 상대방도 당신과 똑같이 행복 회로를 팡팡 돌리고 있다는 뜻이다. 변호사는 마법사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증거를 만들어내서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 단순하게 생각해보시라. 모든 사건에 변호사가 선임되었다면 누구는 지고 누구는 이겨야 한다. 이기는 사람만 있는 소송은 없다. 행복 회로를 돌리는 건 개인에게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마냥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다가 패소하면 변호사 탓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변호사들은 사건을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의 가능성에 대해서 조언해 줄 필요가 있다.




6. 저는 지금부터 뭘 하면 되나요?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의도를 포함하면 매우 잘못된 질문이다. 법률적인 다툼은 현재까지의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시작되는 전쟁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어떤 증거를 '만들어서' 이기겠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법률적인 분쟁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무실을 찾으시는 분들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미 분쟁이 발생한 상태에서는 '어떤 일을 하셔도' 소송에 크게 도움은 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변론에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의사의 처방을 받았으면 처방대로 약을 먹고 쉬면 된다. 변호사의 조언을 받았으면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상처를 낫게 하겠다고 집에서 된장을 바르고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변호사가 위법한 행위를 지시하지 않는 한 그냥 변호사의 조언대로 행동하시면 된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적고 나니 10년 동안 참 까칠하게 사무실을 운영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게 내 성격이니 어쩔 수 없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도 사람 사이의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사람과 맞지 않으면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없다. 가깝다는 이유나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를 선택하지 말고 그 사람과 케미가 얼마나 맞는지 보고 선임하시는 걸 추천드린다. 그리고 일단 선임했으면 그 심급이 끝나기 전까진 믿으시라. 그래야 일하는 사람도 좋은 결과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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