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직관적 이론이 그러하듯, 일상 활동 이론도 실증적인 연구 없이 대중들의 인식에 쉽게 뿌리내릴 수 있다. 하지만 실증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은 범죄 원인론은 전혀 효과가 없는 범죄 예방 대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형량을 늘리는 것이 범죄 예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형량을 늘리는 것은 범죄 예방 정책으로서는 실격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중범죄자의 감형에 찬성한다는 것은 아니다. 극형을 포함한 중형은 범죄 예방의 효과가 없으니 다른 대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
일상 활동 이론이 가진 내재적 한계 때문에 이 이론을 입증하려는 연구에도 '범죄자가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가?'라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범죄에 있어서 제1요소는 무엇보다 범죄자이다. 요즘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라는 말이 마치 성경의 구절처럼 숭배되고 있다. 창작물에서 범죄자에게 쓸데없는 서사를 부여하여 동질감이 들도록 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그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 학문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고찰을 해야 다른 범죄자의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음도 분명하다.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떠도는 말은 언제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은 진리이다.
집에서 살해당하면 여자일 확률이 높다.
Steven Messner와 Kenneth Tardiff는 「The social ecology of urban homicide: An application of the 'routine activities' approach」에서 일상 활동 이론으로 살인사건을 설명하려고 했다. 살인사건을 발생한 장소- 피해자의 집, 피해자의 집에서 10블록 이내, 범죄자의 집 -에 따라 분류하고, 피해자와 범죄자의 관계- 면식, 비면식 -에 따라 분류했다. 그 결과 여자는 일상 활동의 특성상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고(1980년대 논문임을 참고하시라), 그에 따라 집이나 그 근처에서 살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에 면식범, 특히 남자 면식범에 의해 살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보고한다.
범죄의 절반은 3% 지역에서 일어난다.
Lawrence Sherman, Patrick Gartin, Micheal Buerger는 node와 path를 기준으로 범죄 신고가 집중되는 지점을 찾아내고자 했다. 그들은 미니애폴리스의 공식 경찰 신고를 분석한 결과 50%의 범죄 신고가 3%밖에 되지 않는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결론 내렸다(Hot spots of predatory crime: Routine activities and the criminology of place, 1989). 그들은 더 나아가 모든 강도 범죄가 2.2% 지역에서, 모든 강간 범죄가 1.2% 지역에서, 모든 차량 절도 범죄가 2.7%밖에 되지 않는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건 너무 옛날 논문이잖아?
일상 활동 이론은 1980년에 그 이론적 기초가 거의 완성되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많은 실증적 연구들이 뒤따르고 있다. 2022년까지 일상 활동 이론은 다양한 범죄군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을 조금만 살펴보도록 하자. Jessica Blayney 등은 대학교 1학년들을 대상으로 한 합의 없는 성적 경험을 일상 활동 이론과 연관 지어 설명하려고 했다(Contextual risk for nonconsensual sexual experiences: An application of routine activity theories among first-year college women who drink alcohol, 2022). 재미있는 점은 위 논문에서 '대상의 취약성'이나 '감시의 부재'가 주된 변수가 아니라 낯선 사람을 만난 사실이 주된 변수로 지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게 내가 범죄자가 더 중요한 변수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렇다고 그것이 다 진실을 '제대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의 경험적 타당성을 모두 믿어야 할까? 그것을 믿지 않을 이유는 충분히 있다. 예를 들어 Sherman은 모든 강도 범죄가 2.2% 지역에서 발생한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강도라는 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체 지역을 기준으로 한다면 매우 낮은 수치가 나올 수밖에 없다(우리나라의 2021년 강도 범죄는 495건으로 166,409건을 기록한 절도의 약 0.3% 수준이다. 물론 미국은 총기 영향으로 우리나라보다 10만 명 당 강도의 비율은 높은 편). 변호사가 전국 0.006% 지역에 모여 산다라고 하는 것은 특별히 의미 있는 진술이 아니다.
장소는 범죄를 발생시키는가? 그저 주최할 뿐인가?
위의 결론을 모두 믿는다고 하더라도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장소는 범죄를 발생(cause)시키는가? 아니면 어디에선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범죄를 그저 주최(host)할 뿐인가?(Sherman 등의 위 논문) 만약에 장소 자체의 특성이 일어나지 않을 범죄를 유발하는 것이라면 그 장소의 특징을 바꿈으로써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범죄가 그곳이 아니라도 어딘가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었고, 범죄자가 그곳이 편안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 장소에 대한 감시를 확충하더라도 범죄의 전이(crime displacement)가 일어난다. '지리적 요인이 둘 중 어떤 것에 더 가까운가'라는 질문에는 다른 이론을 함께 고려하여야만 적절하게 대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