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계절

프롤로그

by 박준희

나는 어려서부터 농사와 함께 자랐다.
별다른 선택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 땅에서 태어났고, 그 삶 안에서 자랐을 뿐이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달려가 염소와 소에게 먹이를 주고,
밭일로 바쁜 아버지의 뒤를 따라다니며 일을 거들었다.
어린 손으로 삽을 들고, 발에 흙을 묻힌 채 뛰어다녔던 그날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중학교까지는 시골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부터는 도시로 나와,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와 험께 생활했다.
두 살 위인 누나는 먼저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뒤따라 도시의 리듬에 적응해 갔다.


그런데 방학만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시골로 돌아갔다.
친구들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도심에서 여유를 즐겼지만
나는 뙤약볕 아래에서 잡초를 뽑고,
밭에서 작물을 돌봤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방학은 늘 ‘집으로 가는 시간’이었고,
그 집은 언제나 ‘일손이 부족한 밭’이었다.


그때는 종종 서운하기도 했다.
왜 나는 친구들처럼 좀 더 편하고 화려한 방학을 보내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방학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였다.
하루 종일 밭일을 하고 저녁 밥상 앞에 앉으면,
어느새 불만은 사라지고 기분 좋은 피로감과 소박한 뿌듯함만 남았다.


어쩌면 나는 이미 농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흙 묻은 손을 보며 자랐고,
어머니가 해주시는 소박한 시골 밥상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미 그 땅의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말이면 여전히 시골에 내려간다.
가끔은 두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가끔은 아버지를 혼자 두기 싫어서.


이제 와 돌아보니,
흙 묻은 손으로 농사를 짓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단순한 고된 노동이 아니었다.
그건 말없이 전해지던 인생의 교훈이었고,
사랑의 표현이었으며,
어쩌면 나 자신을 이해하는 열쇠 같은 것이었다.


나는 농사를 전업으로 짓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농사는 언제나 내 삶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의 농사, 그리고 그 곁을 지켜온 아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솔직하게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에도 작은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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