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기다린 만큼 달콤한 열매
수확의 계절이 가까워지면, 우리 가족은 은근한 긴장감과 설렘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비닐하우스에 나가 수박을 툭툭 두드리며 익었는지를 가늠한다. 그 소리를 듣고 “이젠 다 익었구나.”라고 판단하는 아버지의 손길은, 오랜 경험에서 나온 특별한 능력이다.
토마토는 하루가 다르게 빨갛게 익어가며 비닐하우스 안을 환하게 물들인다. 처음 푸르렀던 열매들이 빨간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한 마음이 밀려온다. 그런 순간마다 아버지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농사는 정확히 땀만큼만 돌려준다. 더도 덜도 없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농사엔 운도 필요하지만, 결국 땀과 노력으로 얻은 결과물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가장 기다리는 순간은 바로 수박을 처음 자르는 날이다. 아버지가 큼지막한 수박 하나를 선택해서 칼로 쩍 갈라내면, 선명한 붉은 속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 한 조각씩 입에 물면, 달콤함과 시원함이 여름 더위를 씻어낸다. 처음 수확한 토마토 역시 모두의 입에서 환영받는다. 조금 투박한 모양이라도 우리가 직접 키운 열매라서인지 더 맛있고 애틋하다.
수확이 끝나면 이웃들과 나누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는 늘 넉넉하게 챙겨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신다. 도시에 돌아온 나도 수박과 토마토를 먹을 때면 가족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농사가 내게 남긴 것은 단지 열매뿐 아니라 가족과의 소중한 기억이었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와 친구처럼 사이가 좋다. 주변에선 무뚝뚝한 아버지와 친한 아들이 신기하다고 말하곤 한다. 유년 시절 아버지는 늘 바쁘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7형제 중 맏이였던 아버지에게 가장의 책임은 무거웠을 것이다. 나를 앉혀놓고 제대로 놀아준 기억이 없다고 늘 미안해하시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버지와 나 사이의 친밀감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일을 하며 나눈 대화들, 수박을 옮기며 흘렸던 땀, 그 모든 시간이 아버지와 나를 이어준 끈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은 그때도 수박 농사를 지었다. 수박을 수확하면 1톤 트럭에 실어 직접 전국의 농수산물 시장으로 운반해서 팔았다. 서울, 구미, 청주, 대전 등 도시마다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수박을 팔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힘들었을 텐데도 어린 나에겐 여행처럼 즐겁기만 했다. 시장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아버지 옆에서 바라보던 도시의 풍경들은 내 유년 시절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절 아버지와 보낸 그 시간들이 나를 더 단단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수박과 토마토는 매년 자라나고 익지만, 우리가 수확하는 것은 단지 열매만이 아니다. 가족 간의 사랑과 추억,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값진 기억들을 거두는 것이다.
수확의 계절이 되면 나는 다시 아버지와 함께 수박을 툭툭 두드려본다. 어릴 적 그때처럼, 올해도 우리는 기다린 만큼 달콤한 열매를 거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