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계절

5장. 농사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by 박준희

수박과 토마토 수확이 끝나고 나면, 잠시나마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집은 곧바로 후작으로 가을토마토와 가시오이를 심어야 한다.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다시 밭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텅 빈 비닐하우스를 보면 허전함보다는 곧 다가올 새로운 농사에 대한 생각부터 든다. 작물을 모두 수확한 다음 날부터 아버지는 트랙터를 다시 밭으로 가져간다. 수박을 키웠던 흙을 갈아엎고, 다시 거름을 뿌려 새로운 가을 작물을 심을 준비를 한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계절을 쉬지 않고 달린다.


“농사꾼한테 휴식이란 없다.”


아버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말 속에 담긴 현실은 그리 가볍지 않다. 농사는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년 아버지와 함께 밭에 서 있으면서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


여름 내내 수박과 토마토를 키우느라 땀을 흘렸지만, 우리 가족은 다시 가을 농사를 준비하며 흙과 마주한다. 가을토마토와 가시오이는 여름 작물과는 또 다른 관리가 필요하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가을 날씨에 맞춰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닫아줘야 하고, 물을 주는 양과 시기도 꼼꼼히 조절해야 한다.


가시오이는 줄기가 빠르게 자라고 곁순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하루라도 관리를 게을리하면 금세 덩굴이 엉킨다. 아버지는 늘 강조하신다.


“덩굴은 사람 관계랑 같아. 방치하면 바로 엉켜버려.”


작물을 돌보는 일이 인간관계를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이 말은 늘 가슴에 남는다.


가족들이 도시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오면, 나는 늘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농촌을 떠나는 발걸음은 편하면서도 아쉽다. 밭일로 몸은 지쳤지만, 부모님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순간들이 금세 그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를 뒤로하고 도시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곧 다시 밭으로 돌아올 날을 생각한다.


도시에 돌아가면 다시 회사 일이 시작된다. 농사를 짓던 기억은 잠시 잊히다가도, 가끔 마트에서 수박이나 토마토, 가시오이를 보게 되면 다시금 밭에 서 있던 우리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마다 농사는 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 가족은 농사를 지으며 늘 배운다. 삶이란 끊임없이 이어지고,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마라톤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작물 하나를 끝내고 나면 또 다른 작물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의 계절이 끝나면 다음 계절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삶은 돌고 돌아간다.


“결국 농사란 인생과 같다.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하지만, 움직인 만큼 삶도 돌아오는 거야.”


아버지의 말처럼 우리 가족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쉬지 않고, 멈추지 않고, 새로운 작물을 심기 위해 흙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동안 우리 가족의 삶도 조금씩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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