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추억은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을 말하며 긍정적이며 행복한 기억을 이를 때 많이 사용된다. 추억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을 이르는 말이다. 또는 그런 생각이나 일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추억은 있고 추억의 진하기와 방향이 다를 뿐이다.
어린 시절이라는 말은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어린 시절은 누구에게는 아련하게 남고 다른 누구에게는 의미가 없고, 어떤 이는 진절머리가 난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한 추억이 많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아이가 기억하는 부모와의 추억이 좋기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나의 어린 시절 중 가장 소중한 추억은 내 방구석에서 뒹굴뒹굴 책을 읽은 기억이다.
다른 이들이 “그게 뭐야? 책 읽은 일이라고?”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뜻깊은 투쟁의 역사가 있는 일이었다. 삼 남매가 방 세 개인 집에서 살았는데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동생들과 따로 방을 쓰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부모님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반에서 1등 하겠다, 엄마 일을 돕겠다 별별 공약을 내세웠다. 그리고 1학년이었던 코흘리개 막냇동생을 구워삶아서 내 편으로 만들어 나갔다. 아버지는 딸이니까 혼자 방을 쓰는 게 좋겠다고 따로 말씀하셨기에 결국 바로 아래 남동생을 제외하고 모두 찬성했다.
“누나만 방이 생기는 게 어디 있어. 내 방도 만들어 주세요.”
“방이 하나만 남는데 어떻게 너까지 방을 줄 수 있겠니?
한참을 남동생을 설득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5학년 가을부터 내 방이 생겼다. 웃풍이 좀 있었지만, 뒤뜰로 난 창은 멀리 초등학교와 등굣길이 보여 난 그 방이 너무 좋았다. 고개를 내밀면 우리 집 강아지 쫑이 뛰어다니면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닭장에 닭들이 알을 낳고 모이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 방 생긴 게 그리 좋냐? 안 춥나?”
“괜찮아. 좋아. 내 방이잖아.”
여름과 가을에는 운치와 관계가 먼 시골의 풍경이었지만 그 창가를 좋았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아버지께서 비닐을 사 와서 창문을 밀봉했다. 그래도 추운 편이었지만 따끈한 아랫목이 좋았다. 그 방에서 제일 안 좋았던 기억은 연탄가스에 중독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마루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서 안방을 두들이고 동치미 국물을 먹고 하루 쉰 덕분에 기운차게 다음 날 학교를 가기도 했다.
학교에 다녀오거나 방학이 되면 나는 매일 아버지의 서재에 가서 다달이 작가님들이 보내오는 동화책이나 동시집을 들고 왔다. 동화작가이신 아버지 앞으로 전국에서 우편으로 배달되어 오는 책들은 매번 내가 뜯어보곤 했다.
책상에서 읽다가 이불 위에서 엎드려 읽다가 엄마에게 야단을 들었지만, 실실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
“축농증 걸린다. 엄마가 처녀 시절에 책상이 없어서 엎드려 책 읽어서 축농증 생겼다고 이야기했지? 엎드려 책 읽지 마라.”
“춥단 말이야.”
“안방에 가서 읽으면 되잖아.”
“싫어. 아버지 텔레비전 보시고 쟤들은 놀고 있잖아. 시끄러워서 안 가요.”
“그럼 책상에 가서 읽어라. 이불 뒤집어쓰고 읽으면 되겠네.”
그렇게 눈만 빼꼼 내놓고 책을 읽었던 겨울밤이 생각난다.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은 아가사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시리즈와 셜록 홈스 이야기였다. 무서운 소설은 싫어했지만 추리 소설에서 멋지게 범인을 찾아내는 부분이 좋아 무서움을 참고 읽곤 했다.
세계 명작 전집, 한국 명작 전집은 작고 두꺼운 책이었다. 어렵고 재미없는 철학과 인문학에 관해 쓴 유명한 작가들이 많은 전집이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사 놓으셨나 보다 짐작할 뿐이고 여쭈어본 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게도 머리를 싸매고 한 장씩 겨우 읽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려운 책들 중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발견했을 때는 내 인생책은 만난 것 같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곤 했다.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다가 간혹 추리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잊고 읽기도 했다. 세계명작, 한국 명작, 철학서, 백과사전까지 읽으며 중학교를 다녔던 그 방은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잔잔한 미소가 절로 나오는 행복한 추억이다. 잊고 싶지 않아 내 서랍 속에 고이 저장해 둔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