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약 좀 먹여주세요. 어제 안 먹여 주셨더라고요. 가루약도 있어요."
1학년 담임을 하면 가끔 이런 민원성 전화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 중 흥미로운 통계 중 하나는 바로 민원에 관련된 것이다. 흥미롭다고 말하기에는 슬픈 현실이지만 정확히 우리 세태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 더 관심이 갔다.
그래프를 보면 정부기관에 민원을 넣는 건수가 2017년에 200만이 되지 않았던 것과 1500만 개에 육박하여서 급격하게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부터 늘기 시작한 민원은 현재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없는 것 같다.
이런 민원을 넣는 상황은 학교에는 더 혹독하게 반영되었다. 교사가 민원을 해결해주어야 하는 사람으로 전락한 뒤로는 학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이 요청이라 볼 수 없고 들어주지 않았을 때 당하는 교권 침해는 심각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이의 약을 가루를 타서 먹여주어야 하는데 해 주지 않는 것에 분노하는 학부모의 말이 어떻게 곱게 나올 수 있겠는가?
민원의 낱말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주민이 행정 기관에 대하여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일'이라고 나와있다. 요청은 자신이 필요한 어떤 일이나 행동을 상대방에게 청하는 것이다. 같은 것 같지만 사용하는 어감이 다르며 행할 때 기분도 다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민원으로 해결하는 것과 완전하게 다르며 협력적인 관계에서 요청의 예절을 지켜야 한다.
요청은 어른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교실에서 친구에게 요청을 효과적으로 하는 아이는 밉상을 받거나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저 아이가 자꾸 떠들어요. 시끄러워 죽겠어요.”
짜증을 가득 담은 희영의 말에 그 아이의 주변을 쓰윽 둘러보았다. 그 아이 앞자리에는 영우라는 좀 시끄러운 아이가 있었는데 솔직히 교사인 제 말도 안 듣고 말이 많은 아이였다.
“그래, 선생님이 한 번 말해 볼게. 희영이 넌, 너 할 일을 하고 있어.”
하지만 희영이는 영우에게 계속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그냥 두면 더 시끄럽고 싸움이 날 것 같아
“희영아, 네가 하는 것은 선생님의 일이야. 친구에게 부탁이나 요청을 할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해. 짜증 내고 화를 내면서 말하면 누가 너의 말을 들어주고 싶겠니?”
그러나 희영이는 자신이 옳으니까 영우가 당연하게 들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교사가 중단하라는 말을 해도 희영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희영이와 마주 앉았다.
“희영아, 너는 왜 선생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
희영이는 영우의 탓으로 돌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걔가 내 말을 들어주면 되잖아요?”
친구에게 자기의 뜻을 관철시켜야만 희영이는 멈출 것 같았다.
“희영이 너는 친구의 말을 모두 다 들어주니?”
“아뇨. 제가 왜 친구 말을 다 들어줘야 해요?”
“그래. 다른 사람의 말을 모두 다 들어줄 수 없어. 그럼 네가 지희랑 놀고 싶을 때 어떻게 이야기해야 같이 놀 수 있어?”
지희는 인기 많은 아이로 누구나 놀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너! 나하고 놀아. 놀아줘야 해. 명령조로 이렇게 말하면 될까?”
그제야 약간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면서
“아뇨, 친절하게 부탁해야 해요. 지희야, 나랑 놀아줄 수 있어?라고요. "
“그래. 영우에게도 그렇게 말해야 너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거야. 그래야 영우가 조용히 해 줄 거야.”
“영우가 잘못했잖아요.”
“잘못해도 존중해 줘야지요. 엄마가 혼내실 때 말을 함부로 하시면 너는 좋을까요?”
희영이의 어머니는 매섭게 혼내는 스타일이라 희영이는 친구의 잘못을 느슨하게 봐주기가 어려웠나 보다.
희영이는 간단하지만 지혜롭게 요청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 날카롭게 말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희영이의 변화된 태도로 영우가 좀 조용해졌다. 그 뒤로 수업이 한결 매끄러워져 수월했던 기억이 있다.
희영의 뾰족한 말은 민원과 비슷하다. 잘못한 일을 바로잡아라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구나 일반적인 민원에도 예절은 분명 필요하다. 예절을 지켜 말한다고 바로잡아 주었으면 하는 일을 나라나 회사에서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학부모와 교사의 대화는 첫째,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면 좋고 ‘나’의 관점에서 말하기 하면 좋다. 요청을 할 때, ‘당신은 이렇게 해야 해’보다는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더 부드럽고 존중적인 방법이다.
둘째, 요청은 명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이 좋다. 너무 많은 정보나 복잡한 설명은 오해의 여지를 줄 수 있다. 요청과 함께 감사의 표현을 포함하면 상대방이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째, 요청 과정에서 비판적인 태도보다는 격려와 지지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여 상대방의 자존감을 높여주면 서로 좋다. 요청 후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고 반응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여 문제에 대하여 대화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면 좋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교사와 부모들은 더 존중받고 이해받는 대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으며, 아이에 대한 더 좋은 변화와 성장을 모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